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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화물기사 유진복(43)씨가 부산항에서 할당받은 컨테이너를 차량에 실은 뒤 다음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있다. 2023.1.17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의(衣). 컨테이너 화물기사 유진복(43)씨의 차량 수납공간에는 일주일치 옷가지와 속옷이 들어있다.

식(食). 한편에는 즉석식품과 라면이 있고, 제품을 끓일 버너와 전자레인지도 있다.

주(住). 운전석 뒤편 두 발을 뻗고 잠을 청할 공간이 있다. 덮고 잘 이불은 물론, 더위와 추위를 막아줄 냉난방 기구도 완비했다. 유씨에게 화물차는 의식주가 해결되는 '집'이었다. 그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일과 생활의 경계가 무너져, 일을 하는 수단인 차량이 집이 되어 버린 그의 일상을 따라갔다.

지난 16일 오전 9시30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 공영차고지. 25t 화물 트레일러 기사인 유씨가 빗자루와 쓰레받기, 대걸레로 트레일러에 실린 2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분 ) 컨테이너 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는 30분 뒤 이 컨테이너를 2터미널에 반납한 뒤, 1터미널로 이동해 빈 컨테이너를 다시 실어야 한다.

기사인 그가 본인 소유도 아닌 컨테이너 내부를 청소하고 있던 이유는 다름아닌 시간 때문이었다. 내부가 더러운 컨테이너는 반납을 받아주지 않는데, 전문 업체에 청소를 맡기면 운송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를 한 기사에게 지급되는 대가는 없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오전 9시55분. 그가 운행을 시작했다. 2터미널에 컨테이너를 내린 뒤 1터미널로 곧장 이동했다. 서류 작업이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30여분 만에 컨테이너를 다시 싣는 작업까지 마무리됐다. 다음 일정은 충북 보은으로 이동해 제품을 상차하는 것이었다. 그때 유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운송사 관계자. 보은까지 빨리 가달라는 독촉 전화였다. 

유진복씨 '차량이 집' 의식주 해결
오전 10시부터 새벽 2시 넘어 운행
수시 독촉 전화… 밥은 13분 만에
유씨의 트레일러는 1TEU 컨테이너 2개를 실을 수 있다. 이날 운송은 1TEU 컨테이너 1개만 잡혀 용량의 절반만 싣고 부산항까지 가야 할 판이었다. 서둘러 직송(상차가 끝난 컨테이너) 물량이 있는지 수소문했으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 왕복 기름값만 50만원에 달하는 부산행을 손해를 감수하고 가야했다. 시간이 좀 지체되니, 화물 위탁 업체에서 또다시 전화가 왔다. 피가 마른다. 오전 11시를 조금 넘겨 보은으로 향했다.

 

유씨는 지난 2013년 컨테이너 화물 기사로 발을 내디뎠다. 당시에는 다른 이가 주인인 차량을 대신 운전만 하는 기사였다. 3년 뒤 본인 명의 차량을 처음 샀고, 2020년 원래 차량을 팔고 2억4천500만원을 주고 지금의 차량을 매입했다.


그는 안전운임제 도입 이전과 이후, 그리고 지난해를 끝으로 일몰된 현재 상황을 전부 경험한 기사다. 그는 첫차를 산 2016년 주5일을 수도권과 부산항을 오가며 일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5일은 소위 '나인 투 식스'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차량을 집처럼 여기고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한 뒤 주말 중 하루만 가족이 있는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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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늦은 점심 식사를 하던 와중에 유진복(43)씨에게 9살 딸의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운임료가 적으니, 운행을 많이 할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다. 그는 9살된 딸이 6살 될 때까지 어떻게 크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수출입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 최소 운임 기준을 산정한 안전운임제가 지난 2020년 도입된 이후 그의 삶도 약간은 나아졌다. 주 3일만 운행을 해도 생활이 가능했다고 한다. 남는 시간은 가족과 함께 보냈다.

유씨는 "3년간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고 일과 생활의 경계가 생겼다. 그제야 '내가 일을 하고 있던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전에는 일을 하면서도 일이라고 생각 못했다. 그냥 자동차의 한 부속으로 '운전을 하는 부속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에 적극 동참했던 이유다. 

"벌써 운임료 5만~10만원 낮아져"
"인간답게… 안전운임법안 통과를"
보은까지 148㎞를 쉬지 않고 내달린 끝에 오후 1시23분 한 식품업체에 도착했다. 1시간여의 상차 작업이 모두 끝났다. 이젠 부산항으로 갈 차례였다.

3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오후 7시까지는 항만에 도착해야 한다는 독촉 전화였다. 유씨가 "힘들 수도 있다"고 하자 돌아온 대답은 "최대한 해보라"였다. 그제야 점심 때를 놓쳤다는 걸 깨달았다. 유씨가 자주 가는 경북 상주 주유소 식당에 들러 13분만에 닭개장 한 그릇을 비우고 부산으로 향했다.

유씨는 휙휙 지나가는 창밖 풍경과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줬다. 이야기 상대 없이 오랜 시간 홀로 운전을 해야 하는 기사들의 외로운 사정이 담긴 듯했다. 해가 넘어간 뒤 도착한 부산항에서는 운이 좋았다. 싣고 온 컨테이너를 내리고, 안산으로 가져갈 컨테이너를 싣는 데 30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유씨는 이를 두고 마치 '설날' 같다고 웃어 보였다. 


유씨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목적지는 안산. 부산항에서 시간을 절약했으니, 아까 들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가잔다. 운수 좋은 날이었을까. 주유소에 도착하자 타이어에 구멍이 났다. 정비업체를 불러 수리를 하고 난 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돼서야 종착지로 출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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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새벽 2시55분, 16시간의 운행을 모두 마친 유진복(43)씨의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하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최종 도착시간은 17일 새벽 2시25분. 총 운행거리 820㎞. 소요 시간 16시간. 경기도와 부산항을 왕복한 대가로 그가 받은 운임료는 90만원 남짓, 이 중 기름값으로만 53만원을 지출했다. 유씨가 매달 내는 차량 할부금은 350만원. 타이어와 보험료 등 추가 비용까지 더하면, 잠을 포기한 대신 얻는 수익이라기엔 초라하다.

유씨는 "안전운임제 일몰 이후 경기도에서 부산으로 가는 운임료가 벌써 5만~10만원가량 낮아졌다"며 "국회가 안전운임제 법안을 통과시켜 화물 기사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새벽 3시께 운전석 뒤쪽 잠자리에서 잠이 든 유씨는 이날 오전 8시에 눈을 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