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임신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이젠 정말 안되겠다' 싶어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달았다. 진한 분홍 색깔의 배지는 무채색의 옷차림과 대비돼 더욱 눈에 띄었다. '임산부'란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것 같아 민망했다. 배려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위치에 놓인 상황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임산부석에 앉기란 쉽지 않았다. 만삭이 되기 전까지 배지는 가방고리에 지나지 않았다. 지하철, 버스까지. 크게 다른 건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이런 '민망한' 경우를 헤아려봤다. 한 손가락을 넘어가면서부터 더는 헤아리지 않았다.
임산부 배려석이 생긴 지 10년이 지났다고 한다. 현실은 제도 시행 전후 달라진 게 없는 듯했다. 지자체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16년 임산부가 보이면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비워두는 자리로 캠페인 내용을 수정했다고 한다. 대전교통공사는 임산부 배려석 알림 서비스를 최근 도입했다. 발신기를 가지고 있는 임산부가 배려석 근처로 가면 안내 음성과 점등이 나와 자리 양보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제도를 소개하는 기사를 쭉 읽다 보니 오히려 댓글이 눈에 띄었다. "얼마나 양보를 안 하면 이런 것까지 생겨?"
임신 후기로 접어든 요즘, 한동안 이런 걱정을 잊고 지냈다. 누가 봐도 임산부이니 이제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임산부석에 앉을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는 일은 피하게 된 것도 한몫했다.
승용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어려움은 있었다. 옆 차와의 간격이 좁은 곳에 주차하면 차량 문을 여닫고 나서 배가 차량과 차량 사이에 끼여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을 하도 겪으니 차량을 운전석보다는 조수석 쪽으로 좀 더 기울여 주차하는 웃지 못할 습관마저 생겼다. 임신한 경험이 없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상황이다.
매번 '후웁'하며 아무리 숨을 참아보려고 해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보니 다른 방법을 찾게 됐다. 가장 먼저 한 건 임산부용 주차 자리는 없나, 눈길을 돌려보는 일이었다. 임산부용 주차 자리는 비교적 간격이 넓어 주차하고 나오기 편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임산부석을 찾는 게 문제였다. 임산부 전용 주차 자리를 두는 곳이 많지 않은 데다가 있다 하더라도 '임산부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은 차량들의 자리였다. 그들에게 임산부 배려석은 그저 분홍색이 입혀진,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불과한 것 같았다.
의미 없는 일상의 연속에서 의미를 찾고 조명하는 건 기자의 일이다. 겪어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한국은 법으로 임산부를 보호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 이름도 다양하다. 정책적인 뒷받침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정책 지원 이전에 일상 속 작은 배려가 선행됐으면 한다. 몸소 겪은 뒤 보이는 것들에 그나마 위로가 됐다.
/이시은 사회교육부 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