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상륙작전기념관 건립 계획은 이듬해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이 치러지던 날 공개됐다. '인천시 남구 옥련동 일대 2만3천여㎡에 연건평 1천600여㎡의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건립, 인천상륙작전 당시 참전했던 미 해병용사와 국군장병들의 유품과 각종 병기가 전시된다'는 내용이었다. 600여 명 규모의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86곳의 접수창구가 지역 곳곳에 개설돼 모금운동이 시작(경인일보 1982년 4월3일자 6면 보도)됐다.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범인들이 좌경화된 지하이념 서클 소속의 대학생들인 점을 중시해 전국 대학 총장들이 모여 그 대처방안 등을 다뤘다'는 소식이 같은 날 신문에 실렸다. 모금 운동은 약 1년간 진행됐고, 총 15억원이 모였다. 목표로 했던 10억원보다 5억원이 더 많았다. 여기에 시비 28억원이 보태졌다. 모금 완료 이듬해 준공된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이후 안보교육의 공간으로,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이 치러지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인천시, 올해엔 대대적으로 열겠다는 계획
작전중 주민 100여명 희생·실향민 귀향 요구
한국전쟁 50주년을 한해 앞둔 1999년 인천시는 대대적인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인천상륙 2000'을 주제로 참전 16개국 인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송도,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월미도 등지에서 상륙작전 재연을 비롯해 록 페스티벌, 마라톤, 함정공개, 퍼레이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인천시는 인천을 세계에 알리고 인천의 국제도시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계획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6·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이듬해 상륙작전 재연행사와 시가행진 등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인천시에 통보했다. 위원회는 '남북정상회담 합의 내용의 성공적 추진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북한에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했다. 인천상륙작전 50주년을 하루 앞둔 2000년 9월1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내년 봄 서울을 답방하게 된다'는 내용이 신문 1면에 보도됐다.
60주년 기념행사는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등 국내외 참전용사와 장병, 일반 시민 등 2천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로 치러졌다. 재연행사와 시가행진 등도 함께 진행됐다. 코로나19가 한창일 시점에 치러졌을 70주년 기념식은 관련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없다.
인천시가 올해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열겠다고 했다. 최근엔 행사를 주최하는 해군본부 관계자가 이를 협의하기 위해 인천시를 찾기도 했다. 인천시는 시민 등이 참여하는 협의회를 구성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행사를 구체화할 예정이다.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둘러싼 앞선 시간들이 겹쳐졌다.
경제적으로 긴밀한 중국과 관계설정도 중요
'역사적 상처·외교' 염두 검토 귀담아 들어야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정지작업 차원의 폭격으로 월미도 주민 100여 명이 희생됐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실향민이 돼 지금도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위령제도 연다. 인천과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지역의 역사적 상처와 외교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인천시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찾았다. 1960년 미국 군사원조로 들어와 각 군에 보급됐다는 카고트럭, 미군이 개발해 1964년 우리나라에 배치됐다는 호크미사일 등 인천상륙작전과는 관계가 멀어 보이는 야외 전시물들은 여전히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념관 개관 이후 야외 전시물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기념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6만명이라고 한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내년 개관 40주년을 맞는다.
/이현준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