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저녁 포천시 가산면. 다시 찾은 썸밧(가명·24·캄보디아)씨의 창고 겸 비닐하우스 숙소(2022년 12월5일자 1면 보도=[경인 WIDE] 신토불이 국산 농산물, 농약 마시며 키우는 외국인)에는 군데군데 화재 불씨가 될만한 단서들이 가득했다.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하얀 샌드위치 패널을 조립해 만든 방들이 나왔다. 썸밧씨는 이 중 두 번째 방에 월세 20만원을 내고 살고 있다.
외풍을 막으려 단열재(뽁뽁이)를 붙인 간이 현관문을 열자 전기난로가 내뿜는 주황 불빛이 인화성 소재인 비닐 문 주변을 뜨겁게 내리쬈다. 내부 창문은 찬 바람을 차단하려 신문지와 종이상자로 덧대놨다. 샌드위치 패널, 엉킨 전선, 전기난로 등 누전과 화재 위험이 도사리는 환경임에도 스프링클러나 화재경보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썸밧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소화기가 밖에 있긴 하다. 아무리 춥고 위험해도 견뎌야 한다"고 담담히 얘기했다.
화재 위험 도사리는 환경 여전
지난 2020년 영하 20도 날씨에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던 속헹씨가 사망한 이후 열악한 이주노동자 숙소 문제가 불거졌으나 가건축물 숙소는 여전히 횡행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21년 1월 가건축물을 이주노동자 숙소로 제공하는 농장은 신규 고용 허가를 해주지 않겠다는 내용의 개정 지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가건축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농장도 이주노동자를 신규 채용하고 있었다.
실제 썸밧씨 숙소 바로 옆 방에는 지난해 11월 E9 비자를 받고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여성 두 명이 거주한다. 고용부 발표대로면 지난 2019년부터 비닐하우스에 사는 썸밧씨에게는 '직장 동료'이자 '이웃'이 생기면 안 되는 셈이다.
정부 발표 이후에도 개선 미흡
물론 숙소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농장으로 근무지를 바꿀 수 있으나, 일선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썸밧씨는 "나중에 사장님이 비자 연장 동의를 해주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고, 옆 방의 타오(가명·31·베트남)씨와 응옥(가명·31·베트남)씨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집이 좋지 않다. 숙소를 바꿀 수 있는 제도가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선 노동자들에겐 먼 이야기
한편 지난 26일 법무부는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출입국·이민관리청'(이민청)을 만들어 비자, 고용허가제 등 외국인 정책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구감소에 따른 '외국인 인력 공급'에 초점이 맞춰 있을 뿐, 이주노동자 삶의 질을 개선할 방안은 뚜렷이 제시된 게 없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목사는 "이주노동자가 머무는 열악한 숙소 문제나 일터 이동 자유를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독소조항 등과 관련한 개선안이 담겨 있지 않아 우려스럽다. 이민청은 이주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정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