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용인시 도시개발과 공무원 A씨는 자신이 투자한 개발사업 부지가 오랫동안 팔리지 않자 수천만원의 대출이자가 연체되고 은행으로부터 경매 압박을 받는 등 곤경에 처했다.
다급해진 A씨는 B 건설사를 청탁해 사업 매수 대금 명목으로 5억여원을 입금받아 겨우 매각을 성사시켰다. 지난 2021년 A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지난 19일 항소심에서 A씨의 형량은 징역 4년으로 감형(1월30일자 7면 보도=용인시 도시개발사업 뇌물 수수 공무원, 항소심서 '징역 5년→4년')됐다. A씨가 수수한 뇌물이 금전적 이익이 아닌 매각 기회라는 '무형의 이익'뿐이라는 판단에서다.
원심은 수수한 5억여원 중 A씨의 최초 투자금 3억3천여만원의 금액을 제외한 1억6천여만원을 뇌물로 인정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매각가격은 당시의 정상적인 시세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며 "A 피고인은 장기간 매각하지 못하던 개발사업을 처분할 수 있게 되는 '액수 불상의 무형의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건설사 청탁해 투자금 챙긴 공무원
항소심서 "매각 기회" 원심 뒤집어
이처럼 형법은 꼭 재산상 이익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수요와 욕망을 충족하는 무형의 이익이라면 뇌물로 인정한다. 판례는 투기적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사례도 무형 이익 뇌물로 인정했다.
2002년 한 재개발주택조합의 조합장이 자신을 수사하는 경찰관에게 조합아파트 1세대를 분양해준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예상되는 프리미엄의 금액이 불확실하였다고 하더라도 조합 즉 피고인이 선택한 수분양자가 되어 분양계약을 체결한 것 자체가 경제적인 이익이라고 볼 수 있다"며 조합장 측 변호인의 상고를 기각했다.
'성적 욕구 충족'을 뇌물로 인정한 판례도 있다. 지난 2012년 서울에 근무하던 한 검사는 자신이 조사하던 여성 피의자에게 성 접대를 받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 최종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최종 판결에서 "뇌물의 내용인 이익이라 함은 금전, 물품 기타의 재산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람의 수요·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족한 일체의 유형·무형의 이익을 포함하며, 제공된 것이 성적 욕구의 충족이라고 하여 달리 볼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사람 수요·욕망 충족했다면 '인정'
직무 영향력·절박함 등 보고 결정
금액으로 환산되지 않는 무형적 뇌물에 대한 형량은 사건별 상황에 대한 법리적 판단이 쟁점이 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형적 뇌물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등에 따라 수수한 뇌물 액수가 가장 중요하지만 무형적 뇌물은 수수한 자의 직무 영향력이나 지속적 수수 여부, 얼마나 절박한 이익이었는지 등 전후 상황을 토대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