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원은 경기도 내 학교 어느 종목 운동부 학생의 부모였다. 기사는 안 된다는 신신당부에도 우회적으로 설득해 보려고도 했다. 그와 자녀가 겪은 일들을 기사에 담으면, 이전과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강고했다. 이내 나는 의지를 꺾었다. 그러고도 그는 2시간 가깝게 최근 2년 사이 자신이 맞닥뜨린 이야기들을 빼곡히 읊어갔다. 마치 이런 자리를 위해 수십 번은 준비한 사람처럼, 그의 머릿속엔 이 문제를 둘러싼 타임라인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기사가 아니라 기자, 아니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몇 가지 일화에 방점을 찍어 목소리를 높이자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그가 열변을 토해 답답한 심정을 전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눈시울을 붉히며 반대편 상대를 나무랐을 땐, 나 역시 한 편이 되어 질책의 목소리를 더했다. 그는 후련하다는 듯 인터뷰 막바지에 "마음의 정리가 좀 됐다. 지금은 아니지만 기사가 필요하면 꼭 먼저 연락드리겠다"며 고마워했다.
지나간 기사로 자주 부끄러워하면서, 드물게 '자뻑'하는 지독한 이 일의 굴레에서 하나의 틈을 마련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쓰지 않거나, 쓰는 것을 잊음으로써 그 이상의 의미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틈 말이다. 카페를 나간 뒤 그의 하루가 평안했기를 빈다. 그날 만남 자체가 고통의 터널 속, 그와 자녀의 기댈 언덕쯤은 됐기를 소망한다.
/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