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한 뒤 쫓아갔고, 수차례 전화도 했습니다."

직장 상사의 스토킹과 강제추행에 시달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A씨 측을 대신해 수원지검은 지난달 26일 법정에서 이같이 말했다. A씨는 회식 도중 자신을 강제 추행한 뒤 자택까지 쫓아왔던 상사를 간신히 따돌렸지만, 귀가 후에도 수차례 전화가 쏟아져 공포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는 상사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법정에서 직장 상사인 B씨 측은 자신의 행위는 스토킹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B씨는 전화와 문자 등이 상대에게 닿지 않았다면 스토킹 범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대법원은 2005년 정보통신망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해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 영상 등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당시는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이라 유사한 행위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판결이 내려졌다.

다만 이 법에 의하면 상대방 휴대전화에 울리는 벨 소리 등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송신된 음향이 아니라고 본다. B씨 측은 "5번 중 4번의 전화는 부재중이었다"며 "판례를 보면 수신하지 않은 통화는 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대에게 전화와 문자 등을 지속해서 보내는 건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걸까. 쟁점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가해자의 연락이 '반복'해서 '도달'했는지 여부다. 스토킹은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부호나 영상 등을 상대에게 도달하게 해 불안감을 유발하는 행위를 뜻한다. 연락이 반복될 때 스토킹 범죄가 될 수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국민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에서 피해자 측 대리를 지원하는 서성민 변호사(서성민 법률 사무소)는 "판례도 점차 바뀌는 것"이라며 "스토킹 행위마다 여러 제반 사정을 따져봐야 하지만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면 부재중 목록에 남겨진 가해자의 전화번호도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송신된 일종의 부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