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증금 없이 살 수 있는 방 있어요?"
2019년 수원시 남수동 한 쪽방에 찾아온 세입자는 유모차에 기댄 채 겨우 거동했다. 오랜 투병 생활로 몸은 비쩍 말랐고, 면도하지 않은 얼굴엔 하얀 수염이 무성했다. 가족도, 직업도 없이 거리를 떠돌던 남성은 서류상으론 취약계층이 아니었다.
쪽방 집주인은 새 세입자의 손을 붙들고 행정복지센터로 향했다. "도움은 필요 없다고 고함을 지르며 버티는 통에 실랑이를 벌여 겨우 기초수급생활자 서류에만 서명을 받아냈죠." 집주인 한모(70대)씨가 기억하는 세입자 최모(66)씨와의 첫 만남이다.
취약층 발굴해도 대상자 거부땐
'신청주의' 공공 손길 닿기 어려워
지난해 11월 찾은 남수동 쪽방 맨 끝 칸. 신문지 더미 밑에서 최씨가 얼굴을 드러냈다. 3년 새 건강이 악화한 탓에 사지를 움직일 수가 없어 밤낮을 꼬박 누워서만 지내고 있었다. 집 안은 각종 오물 냄새가 가득했다. 도움을 주려 다가가도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여기 있는 거 하나라도 치우지 말아요." 신문지를 걷어내자 그는 으름장을 놨다.
부산 출신에 일본어에 능숙하다는 그는 소싯적 배를 타고 일본에 건너가 일하기도 하고, 한때는 세계 일주를 꿈꾸기도 했다. 부산, 일본을 넘어 유럽까지. 언젠간 더 넓은 세상을 밟고자 했던 최씨는 2022년 12월 2일, 6.6㎡(2평) 남짓 공간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가족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지만 생전 최씨를 살피는 주변인들은 많았다. 하루에 한 번 집주인과 사회복지사가 들러 간식과 도시락을 놓고 갔다. 쪽방 바로 앞에는 동네 통장이 살고 있어 종종 그에게 줄 빵을 들고 찾아왔다. 하지만 최씨가 받아들이는 도움의 손길은 딱 여기까지였다.
장애인등록 신청과 요양원 등으로 이주를 도우려 사회복지사와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이 한 달에만 수십 차례 방문해 설득했지만, 최씨가 강하게 거부하는 탓에 성과는 없었다. 서류 증명을 위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게 부담스럽고, 그간 모아놓은 물건과 공간을 두고 떠나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취약계층을 발굴해도 최씨처럼 대상자가 거부한다면 공공의 도움이 닿기는 어렵다. 공공부조 원칙인 '신청주의'는 도움을 받으려는 수혜자의 자발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 매일 찾아가 설득해도 결국 서류에 서명하는 건 본인 몫이다.

남수동 쪽방 주민을 관리하는 행궁동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최씨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발굴해도 모든 복지 지원을 거부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문조차 열지 않는 사람에게 지원받으라고 강제로 서명하게도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생명 위급 아닌 한 강요 불가"
일선 사회복지사 겪는 딜레마
대상자가 모든 복지 지원을 일체 거부하는 사례는 신청주의 부작용의 가장 극단에 있는 경우다.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일선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들은 현장에서 한 번씩은 겪는 딜레마라고 한다.
이정은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사무총장은 "119에 신고할 정도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면 강요할 수는 없다. 인권침해와 윤리 문제가 결부돼 있기에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이 고민에 빠지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공공부조 지원도 심리상담처럼 접근방법을 개인 사례마다 다양하게 마련해야 하고, 좋은 지원책이 있으니 신청하라는 걸 넘어 상대방과 유대감을 쌓고 보완해야 한다. 사회복지사들의 전문성을 살릴 방안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