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쉽게 쓴 글은 미처 기사가 되지 못한 채 선배의 불호령만 불러냈다. 실패를 곰곰이 곱씹어봤다. 취재 현장은 촘촘한 논리 싸움이 벌어지는 토론장이 아니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독자 이해를 돕는 논리를 세우는 일은 취재원이 아닌, 온전히 기자 몫이었다.
기자가 만들어야 하는 논리는 두꺼운 책에서도, 저명한 학자가 쓴 논문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오직 현장에서 전하는 이야기, 그 속에 담긴 긴 맥락에서 끄집어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사실을 조합해 논리를 짜는 과정은 두통이 생길 만큼 고난의 연속이지만, 마지막 퍼즐을 맞춘 뒤 찾아오는 묘한 쾌감은 뇌를 상쾌하게 해주곤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진부한 말로 직업적인 보람을 포장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어렵게 쓴 글이 기사로 전해질 때 각자도생 사회에 연대의 불씨를 조금씩 살려낼 거라 믿는다. 타인이 처한 상황에 쉽게 공감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순순히 연대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혐오할 자유도 있다", "누가 대형마트에서 일하라고 협박이라도 했니?", "기업 없이는 노동자도 없다", "왜 돈을 쉽게 벌려고 해서 피해자가 됐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소를 무너뜨리는 건 결국 한 인간의 삶에 담긴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반론을 쏟아내는 대신 진짜 이유를 찾으려 현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당신은 왜 거리로 나섰나요?" 누군가가 말하는 냉소를 전하는 꼼수를 부리는 대신, 단도직입으로 질문하고 답변에 담긴 숨은 맥락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맬 오늘이 묘하게 기대된다.
/유혜연 사회교육부 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