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개봉(1월4일)에 맞춰 새해 첫 주 베스트셀러에 '슬램덩크 챔프'가 순위권에 들더니, 슬램덩크 신장재편판을 거쳐 영화제작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엮은 '슬램덩크 리소스'까지 베스트셀러에 안착했다. 흥행한 영화라고 할지라도 제작 과정 자체를 책으로 내는 것도 드물고, 이렇게 흥행하는 것도 드물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순위가 집계되지 않는 각종 굿즈까지 감안하면 지금 화제가 되는 단 하나의 콘텐츠는 슬램덩크 외에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최근 콘고지신과 관련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과거 콘텐츠가 사랑받는 배경을 분석하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끌렸던 설명은 '불황'이 과거의 향수를 부른다는 것이다.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에 정식 소개된 첫 일본 만화 중 하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에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한국에 소개된 작품이라는 사실이 어쩌면 지금의 슬램덩크 열풍을 만들어낸 간접적인 배경 아닐까 싶다. 3040세대에게는 그야말로 큰 걱정 없던 청소년기에 풍요로운 가정에서 생활하던 시절, 만화방에서 빌려보든, 학교에서 돌려봤든 간에 당시를 추억하게 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슬램덩크였다.
과거 아이템 활용한 '콘고지신' 올해 키워드
슬램덩크·타이타닉 등 향수 불러오며 열풍
사실 콘고지신이라는 말 자체는 신조어지만 콘고지신이 포함하는 '레트로 문화'는 이미 수년 전부터 우리 생활 곳곳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디저트 시장에서 '할매니얼(할머니 입맛+밀레니얼 세대)'이 트렌드로 자리잡아 이른바 '핫'하다는 카페에서 약과나 떡과 같이 고풍(?)스러운 디저트를 만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수원 행궁동이 지금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도 지금은 보기 어려워진 오랜 건물들이 밀집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한 MZ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러 장소가 있지만, 한국적 레트로라는 특별한 분위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시 콘고지신이라는 신조어로 돌아가자면 말 자체는 새로 만들어졌지만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비주류 문화로 치부되던 레트로 문화가 콘텐츠로, 심지어 산업을 주도하는 키워드가 됐다는 선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황이 소환한 옛 기억의 파편이 누군가에게 불황을 돌파할 중요한 아이템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경제,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쉬움도 분명 있다. 콘고지신의 주역이 우리나라 콘텐츠가 아니라는 사실.
극장가에는 슬램덩크뿐 아니라 영화 '타이타닉'도 재개봉, 콘고지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영화는 오롯이 신작만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함께 20여 년 전에 나온 해외 콘텐츠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각종 상품과 마케팅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포켓몬스터 열풍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반면, 한국 캐릭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시마로 정도가 반짝 주목을 받고 있지만, 포켓몬스터와 경쟁이 되지는 않는다.
비주류였던 레트로 문화가 산업 선도 위치
한국, 자원 많지만 트렌드 주도 못해 아쉬움
우리 콘텐츠에도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웹툰이나 웹소설 등이 특히 발달한 우리 문화를 돌아보자면 다시 꺼내어 보고 싶은 콘텐츠가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레트로 문화가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떠오를 시기에 한국이 내놓은 콘텐츠나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면서 지금의 트렌드를 주도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돌파구가 됐던 수많은 캐릭터와 콘텐츠들이 다소 초라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김성주 문화체육레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