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자녀 학교폭력 논란으로 사의를 밝힌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전격 취소했다. 지난 23일 제2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 변호사는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정 변호사는 "국민이 걱정하는 흠결을 가지고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인사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등 공세에 나서 정치 쟁점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2017년 강원도 유명 자립형 사립고에 재학하던 정 변호사 아들은 기숙사 같은 방에서 생활하던 동급생에게 언어폭력을 가해 전학 처분을 받았다. 8개월 이어진 폭력으로 인해 피해 학생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정 변호사 측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심과 재재심에서 원안이 확정됐다. 아들은 자립형 사립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진학했다. 피해 학생은 정신적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상적인 학업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검찰의 인권보호관이던 정 변호사 측이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도 비판이 제기된다.

민주당은 대통령 사과와 인사 실패에 대한 책임론을 주장했다.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정상 작동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한동훈 법무장관을 겨냥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이 정도 사안이면, 인사 검증팀에서 충분히 사전에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검토 결과를 실무진이 보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야당 의원들은 정 변호사가 한 장관과 사법시험 동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검증 시스템을 무력화했다고 맹공에 나섰다.

수사본부장 임명 취소에 따라 사태가 일단락된 듯하나 야권의 정치 공세가 이어지는 등 여진이 불가피해 보인다. 가해 아들의 전학을 막으려 한 소송에서 패한 만큼 금방 드러날 흠결인데도 순조롭게 임명된 과정이 석연치 않다. 야권에선 '이런 중대 사안을 몰랐다면 그게 더 큰 문제 아니냐'고 한다. 경찰청 수사본부장에 경찰이 아닌 검찰 출신이 임명되면서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수사본부장 자리를 경찰 견제의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는 시각에서다. 인사 검증이 실패한 만큼 사과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