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판 더 글로리 죄 지었으면 벌 받아야지' '검사독재 규탄한다' '건폭노조 OUT' '뿌리 뽑자! 학폭·검폭'.
인천지역 길거리에 걸려 있는 정당 현수막이 서울(여의도) 정치 대리전으로 전락하고 있다.
7일 오전 10시께 인천 미추홀구·남동구 일대 주요 교차로를 돌며 정당 현수막 설치 현황을 살펴봤다. 주안역 삼거리와 석바위시장역·인천시청역·모래내시장역·길병원 등 사거리를 돌아보니 각 정당 인천시당과 지역위원장 등이 내건 현수막이 횡단보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인천지역에서 정당 현수막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주안역 남광장 부근에는 5개 가량의 현수막이 빽빽이 걸려 있었다. 나머지 주요 사거리에서도 각 정당과 소속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날 교차로에서 발견한 정당 현수막은 20여 개. 이 중 인천지역 정치·정책 관련한 문구가 적힌 현수막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상대 정당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고, 그나마 정책을 거론한 현수막은 인천 현안이 아닌 국회·중앙정부 이슈가 주제였다.
옥외광고물법 개정, 설치 제한없어
'통상적 활동 범위' 기준 모호 지적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각 정당은 '통상적 정당 활동 범위'의 정당 정책이나 정치 현안에 대해 별도의 신고·허가·금지 등 제한 없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통상적 정당 활동 범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데다, 사실상 중앙당 차원에서 내려온 지침·메시지 위주로 정당 현수막이 제작되면서 인천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이날 주안역 인근에서 만난 조선호(73)씨는 "국가나 인천의 미래를 생각하는 메시지가 아닌 서로 헐뜯는 내용으로만 현수막을 거는 건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이런 현수막은 안 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택시기사 60대 이모씨는 "국회의원이나 정당들이 말로는 정책 챙긴다 어쩐다 하는데 정작 현수막 걸리는 거 보면 누구 욕하고 서로 깎아내리기만 하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인천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 현수막 관련 유권 해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인천선관위 관계자는 "통상적인 정당 활동과 관련해 세부적으로 문구가 정해져 있는 게 없다. 또 문구마다 일일이 심사하면 정당 활동 규제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정당의 계획하에 경비로 추진하는 현수막은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라고 보고, 문구 심사도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현수막 문구는 정당 자율에 맡기고 있다"고 했다.
선관위 유권해석 난색 "자율에 맡겨"
"유권자에겐 공해… 좀더 신중해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마구잡이식 정당 현수막이 유권자(시민)들에게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수막에 지역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담겼거나 건전한 내용이면 의미가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며 "선거철도 아닌 데다 지역에 도움되는 메시지도 없고, 마구잡이식의 중앙정치 얘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한두 개가 아닌 골목마다 정당 현수막이 자리 잡으면서 유권자들에겐 오히려 공해로 다가올 것"이라며 "정당들이 (현수막 설치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에서는 정당 현수막으로 인한 안전사고·민원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인천 연수구에서는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가 정당 현수막 게시용 끈에 목이 걸리며 인도 바닥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인천지역 군수·구청장협의회는 옥외광고물 법률 개정을 요구하는 공동합의문을 발표해 행정안전부에 전달했다. 인천시는 10개 군·구와 정당 현수막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운영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