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12년 만에 정상회담을 열었다. 강제징용문제 해법으로 제3자 변제방식을 결단한 윤 대통령이 직접 일본을 찾아 성사된 회담이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이 갖는 엄중한 의미를 공유한 듯 양국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했다.

하지만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인 만큼 회담은 일정한 성과와 함께 숙제를 남겼다. 양국이 경제·안보협의체를 출범시키는 것은 물론 사실상 전 분야에서 정부간 협의 채널을 구성하고 가동키로 한 것은 관계 정상화의 출발점으로는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할 만하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일 협력 대응을 천명한 것도 양국의 안보적 실리에 부합하는 결과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강제징용 해법 결단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외교적 성의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 기시다 총리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과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함으로써, 보다 진전된 사죄 표현을 희망했던 한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한국의 전경련과 일본의 게이단렌(經團連)의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 창설 합의, 반도체 소부장 수출규제 해제와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취하 결정 등 정상회담에 앞서 발표된 양국 민관 합의들도 이 때문에 빛이 바랬다.

오늘 정상회담 결과는 이미 양국에서 예측된 수준이다. 우리 정부가 지난 6일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공식 발표했을 때, 국내 여론은 물론 일본 정부와 여론도 깜짝 놀랐다. 그만큼 파격적이고 전격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떠안는 대신,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 국제질서에 대응할 한·일 및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안보·경제적 실리를 택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일본 방문은 일본 정부에 대한 압박 외교에 가깝다. 즉 통 크게 양보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동시에,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안보·경제협력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 입장에선 국내 비판 여론을 잠재울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귀국 후 짊어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국민과 야당에게 대통령의 진심을 설득할 시간을 가지는 것은 물론,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유도할 외교전략 수립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