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경기도에 R&D 센터 등 반도체 제조시설을 앞다퉈 설립하는 가운데(3월17일자 9면 보도=경기도에 둥지 트는 '반도체 장비 세계 1위 기업') 전력공급 문제가 이같은 흐름에 대형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제조, 데이터센터 등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 수요가 급증한 상황 속 수도권 전력 공급 인프라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다수의 기업 현장에서 '딜레마'로 떠오르고 있다.
19일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분야 세계 1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는 경기도내에 전공정 R&D 센터 등 반도체 생산시설을 조성하기 위해 대상지를 물색 중이다.
당초 용인시가 유력 후보지로 거론됐지만, 최근엔 후보군에서 멀어진 모습이다. 전력 공급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
AMAT 측은 용인시 해당 부지에 전력 상용·예비 전력으로 각각 200㎿ 전력 수전(전력을 받는 것)이 가능한지 한국전력공사에 검토를 요청했다. 전력 수전량이 많은 만큼 한전의 검토가 장기화되자, AMAT 측은 이 부지가 아닌 화성시·평택시·이천시 등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한전 측은 "요청한 전력량이 매우 많아 검토가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며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치솟아, 과도한 전력 수전 요청 건은 허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인 기업의 생산시설을 유치할 것으로 기대했던 해당 지역 일대에선 내심 허탈해하는 모습이다. 지역의 한 관계자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건설 수도권에 집중
한전 "과도한 전력 허용 불가능"
수요 대응 어려워 곳곳에 '암초'
데이터센터 역시 전력 공급 문제가 최대 관건인 업종이다. 산업분야를 막론하고 데이터 관리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 속 데이터센터 건설 움직임도 그에 따라 늘어났는데, 이같은 건설이 데이터 수요가 집중되는 수도권에 몰리는 추세다. 그러나 현재 수도권의 전력 공급 인프라로는 빠르게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가 어려워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히는 모습이다.
산업계에선 관련 설비를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 조성해야 하지만 전력 공급 인프라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이에 더해 산업통상자원부는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시설이 전력계통 신뢰도와 품질에 영향을 줄 경우 한전이 전기 공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라 이런 상황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전력 문제가 자칫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 등에도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수도권에 2~3년마다 반도체 펩이 들어서고 있다.
이런 시설들이 반도체 클러스터 안에 모여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전력이 많이 소요되는 시설의 수도권 입지가 제한된다면 이런 시너지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관계자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수도권에 투자하는 것을 기피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전기 공급을 거부할 수 있는 기준도 보다 구체화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지금 있는 인프라만으로는 밀려드는 수요를 충족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변전소 등 전력 공급을 위한 인프라를 추가 설치하는 방안이 결정되더라도, 설치까지 짧아야 6년 정도가 소요된다"며 "반도체 클러스터 등은 통상 장기 계획을 토대로 추진해 전력 공급 인프라 조성이 맞물려 이뤄지지만 지금은 단기간에 수요가 늘어난 게 어려움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서승택기자 taxi22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