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텐츠 제작업계에서 일하는 지인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 발표 기사를 보고 물었다. 그는 "프로젝트 하나 끝나면 숨돌릴 시간을 주겠다고 (회사에서) 말하지만, 일감은 매일 생긴다"며 "퇴근하고도 일해야 간신히 기한을 맞추는데, 장기휴가를 어떻게 쓰느냐"고 하소연했다.
일이 몰릴 때 한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쉬게끔 하는 유연한 근무시간을 적용하는 게 애초에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이었다. 특히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해 추가 근무에 대한 보상을 휴가로 적립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여론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감지한 대통령은 '주 60시간'을 거론했고, 주무부처 장관은 60이 맞는지 69가 맞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전국의 노동자들을 만나 진화에 나섰다. 지금도 업무시간은 충분히 긴데, 시간을 더 늘리는 대신 당근으로 주어지는 게 '그림의 떡' 같은 휴가라니 반발이 없는 게 이상하다.
1인당 노동시간을 줄이되 사람이 필요하면 추가로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52시간제 취지다. 그러나 고용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고, 노동 여건도 크게 나아진 건 없다. 그렇다면 손을 대야 할 부분은 둘 중 하나다. 사람을 더 고용하게 하거나, 추가 고용이 안 되면 기존 노동자들에게 보상을 더 해주거나.
시간을 늘리고 줄이는 문제를 논할 게 아니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확실하게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먼저다. 결국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나 사용자는 경기 악화를 이유로 난색을 보인다. 그럼 사용자의 부담을 완화할 방안(법인세 인하 등)과 노동시간 문제를 함께 다룰 수도 있지 않은가. 여야와 노사 간 시각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을 두고 의견 수렴 없이 내놓으니 대립이라는 혹만 하나 더 붙었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타협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정치의 단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