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윤석열 대통령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건의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포기했다"며 비판하는 한편,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재추진하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쌀 문제가 정국을 뒤흔드는 핵심 요인이 된 것이다.
29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문을 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혔다. 한 총리는 해당 개정안이 시장 수급 조절 기능을 마비시키고 미래 농업에 투자해야 할 재원을 소진시키면서도 진정한 식량 안보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실패가 예정된 길로 정부는 차마 갈 수 없다"며 "정부는 쌀 산업의 발전과 농업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를 대통령께 건의코자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안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韓총리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 민주 "국민 먹고사는 문제 포기했나"
가격 폭락 방지 vs 손실 불가피… "시장 조절 기능 약화" 우려의 목소리도
이날 한 총리는 대국민 담화문 발표에 앞서, 국민의힘과 당정협의를 통해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당정협의회 이후 "쌀 생산을 부추기는 악법이고 농민 전체에 피해가 가는 법"이라며 "시장 원리에도 반하고 정책 목표도 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양곡관리법은 '대한민국 쌀값 정상화법'"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것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이라도) 다시 가결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수요보다 더 많은 쌀이 생산될 경우 정부가 이를 모두 사들이도록 한 해당 법안은 지난해 쌀값 폭락 사태 이후 제기됐다. 쌀 소비가 점점 줄어들면서, 올해 들어서도 쌀값은 계속 하락 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산지 쌀값(20㎏)은 4만4천545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3천145원 낮은 가격이다.
다른 시·도보다 쌀값이 비싼 편인 경기·인천지역에선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쌀값 폭락 방지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지만 손실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역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이 농가에서 쌀을 사들이는 가격인 수매가격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경기도의 경우 정부의 쌀 매입 가격이 수매가보다 통상 낮게 형성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인천지역 내 쌀 재배지인 강화군 일각에서도 "시장 조절 기능을 약화할 것"이라며 "대체 작물 재배 활성화 등을 위한 방안이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