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일하고 싶어서요
경기지역 건설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발을 들인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꿰는 이야기는 이렇듯 명확했다.현장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등은 '노조 조합원 채용 강요', 타워크레인 현장 '월례비' 지급 관행 등 이유로 정부가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칭한 데 대해 전체가 아닌 급조된 일부 노조의 일탈이며, 현장의 불법·위험작업을 애써 눈감으려는 '물타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업체와 직접 임단협 '고용 안정'
건설기능학교 운영, 노하우 전수
세칙엔 '폭력·임금착취 땐 퇴출'
"건폭 발언은 불법 외면 물타기"
건설기능학교 운영, 노하우 전수
세칙엔 '폭력·임금착취 땐 퇴출'
"건폭 발언은 불법 외면 물타기"
고용불안정 해소에, 노동자 '육성'까지
지난 3일 의왕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만난 정모(50·해체공)씨가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한 건 불과 1년 6개월 전이다. 12년 전 형틀 목수 일로 건설현장에 뛰어들었을 땐 인력 사무소와 '오야지', '십장' 등 중개상들을 통해 일감을 구했지만, 이런 중간 체계를 거치는 탓에 임금이 깎이는 등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다.정씨는 "사람(중개상)이나 사무소를 통해 하루 일당을 받으며 일했는데 그마저 온전치 못한 임금이었다"며 "노조에 들어온 이후로는 일감을 알아서 찾아다니지 않고 임금도 그대로 다 받아서 좋다"고 했다.
정씨가 노조 조합원이 돼 고용 안정을 얻게 된 건 건설노조가 철근콘크리트업체 등 전문건설업체(단종)와 현장에서 직접 임금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덕이다.
건설업체(사용자)와 노조가 각각 교섭단체로 임금 테이블을 열게 되면서 10시간 이상 장시간 건설현장 노동도 8시간(하루 법정근로시간) 노동시간 체제로 정착하고 있다. 이밖에 노동자들이 1년 이상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며 퇴직금을 받게 됐고, 공기를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아 부실시공도 줄었다고 노조 측은 설명한다.
건설노조는 고용안정과 더불어 내국인 건설노동자의 명맥을 잇게 한다는 데에도 한몫하고 있다. 산하 조직을 통해 건설노동자를 발굴해 어엿한 현장 기능공으로 발돋움시키는 '건설기능학교'가 대표적이다.
경기 중서부 지역에는 안산시에 기능학교가 있으며, 지난 10여 년간 이곳에서 1천600명이 넘는 건설노동자가 탄생했다. 이 기간 서울·경기지역 5개 기능학교에서 약 5천 명의 건설노동자가 나왔다.
이 학교 출신 형틀목수 조순영(52)씨는 "아파트 경매 관련 일을 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망치 잡는 법부터 배웠다"며 "현장에 나가 교육이 끝나는 게 아니라 담당 '이끔이'(사수)가 있어, 중년 여성인 나도 지금의 기능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되짚었다.
"장시간 위험노동 개선이 우선"
건설 노동자들은 정부가 건설노조 활동을 '건폭'이라 규정하는 것과 관련 이를 계기로 현장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뿌리 깊은 불법 하도급 및 안전 문제 등을 가리는 술책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도 비판했다.
이들은 최근 논란이 된 조합원 채용 강요의 경우 '불투명한 고용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종합건설사의 하청인 전문건설업체의 재하도급이 금지돼 있음에도 현장에선 이미 만연해 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건설노조의 단체교섭 요구 등이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최근 건설현장에서 폭력 행위 등을 통해 돈을 뜯어낸 것을 두고,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지역 관계자는 "일부 급조된 노조의 일탈을 전체 노동자의 잘못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조합원의) 불법 행위는 내부 세칙 등으로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의 세칙을 보면, 폭력행위, 임금착취 등을 엄격히 금지하며 조합 규율을 어길 시 즉각 퇴출까지 가능하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정부가 지목한 타워크레인 현장 '월례비' 문제에 대해서도 노조의 입장은 명확했다. '급행료' 성격으로 하청업체가 크레인 조종사에게 관행적으로 지급한 것인데 그간 조종사들은 그만큼 위험한 노동을 감수해야 했다.
건설노조는 앞서 원청인 종합건설업체들이 모인 대한건설협회에 "월례비 지급을 중단하는 대신, 장시간 위험 노동을 함께 근절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