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700억원 쩐의 전쟁'

경기도교육청이 도내 학생들에게 보급하는 '학교 스마트단말기'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올해 수십만 대의 태블릿PC(윈도즈·크롬 등 운영체계를 사용하는 휴대용 컴퓨터)를 학생에게 보급하는데, 2천787억원의 예산을 대기업이 독식한다는 우려가 제기돼서다. 대기업이라도 학생들에게 높은 품질 제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과 중소기업 제품의 사양이 월등한 만큼 공공기여 차원에서 종전처럼 중소기업 제품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부딪친다.

MAS에 가격 위주 작년 65% 차지
도의회 '협상 계약' 조건 예산 통과
일괄 납품공급에 대기업 절대 유리
"몇년 지난 것보단 성능 선택해야"

■태블릿 업계의 큰 장이 된 학교 스마트단말기=지난 2021년 시작된 학교 스마트단말기 보급 사업에 따라 지난 2021년 43만2천290대, 2022년 34만7천641대가 학교에 보급됐다. 연도별 보급 내역을 분석하면 문제가 보인다. 2021년 전체 보급량 중 삼성전자 제품이 29만4천727대, 중소기업 7개사가 납품한 제품이 13만7천563대였다. 지난해엔 삼성전자가 11만9천902대, LG전자 1천43대, 중소기업 9개사가 22만6천696대였다. 실적을 보면 21년엔 중소기업이 30% 가량, 지난해엔 무려 65%를 납품했는데 올해는 자칫 중소기업 제품이 사라질 상황이 된 것이다. 비밀은 납품 계약 방식에 있다.

■다수공급자계약(MAS)이냐 협상에 의한 계약이냐=지난 2년 동안 납품된 77만대 이상 스마트단말기는 다수공급자계약(MAS)으로 공급됐다.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품질·성능 등이 일정한 물품을 수요기관이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 MAS다. 즉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록된 제품들로 입찰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도교육청이 각 지역 교육지원청에 예산을 내려보내면 교육지원청이 지원청별로 별도 계약을 통해 스마트단말기를 납품받아 공급했고, 이런 방식 덕분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품이 함께 제공될 수 있었다. 21년과 22년 중소기업 제품의 비중이 달랐던 건 '학교 스마트단말기 보급 세부계획'의 한 조항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1년엔 '예산범위 내에서 가급적 성능위주 물품 구매 권장'이란 단서가 붙었고, 22년엔 '가급적 성능위주 물품 구매 권장하되 기기에 따라 규격·성능 차이가 미미한 경우 가격위주 물품 구매'란 단서가 붙었다. 계약에 이런 조항이 미친 영향은 컸고, 결국 21년(30%)·22년(65%)의 중소기업 제품 납품 비중 차이를 낳았다. 계약 부대 조항에 따라 실적이 차이가 나는 상황 속에 당연하게도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계약 방식에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기업 성능이냐 중소기업 우대냐 혹은 대기업 우대냐 중소기업 성능이냐=올해 상황이 바뀌었다. MAS 외에 '협상에 의한 계약'이란 대안이 떠오른 것이다. 협상에 의한 계약은 도교육청이 직접 납품자와 계약을 맺고 일괄로 제품을 받는 형태다. 이렇게 되면 납품자가 도교육청과 협상을 벌여 올해 전체 물량을 납품하게 된다. 지난해 예산 심사 과정에서 경기도의회가 협상에 의한 계약을 조건으로 예산을 통과시킨 게 발단이 됐다. 현재 지역교육청까지 예산이 내려간 상황인데 계약 방식이 정해지지 않은데다 수요 조사를 벌이느라 예산 집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의회 측은 협상에 의한 계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 경우 대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협상 계약을 주장하는 도의회 교육기획위원장 황진희(민·부천4)의원은 "협상에 의한 계약을 하라고 지난해 말 예결위에서 의결했고 (도교육청은)그대로 집행하면 된다. 원하는 제품을 취지나 목적에 맞게끔 하겠다는 것"이라며 대기업 우대 우려에 대해는 "(대기업에 퍼주는 혈세낭비라는 말이 있는데)낭비란 표현이 적합하지는 않으나 그 관점대로 보자면 중소기업은 혈세낭비가 아니고 대기업은 혈세낭비냐"고 반박했다.

통상 MAS보다 협상에 의한 계약이 납품까지 걸리는 시일이 오래 소요돼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이 적용되면 올해 2학기 시작에 맞춰 보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피감기관이기도 한 도교육청은 이런 상황에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다만, 협상에 의한 계약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교육계 관계자는 "(납품 대상)대기업 제품은 몇 년이 지난 거라 중소기업 제품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중소기업을 우대하라는 게 아니라 성능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게 맞다는 것"이라며 "이미 2년 동안 MAS로 진행했고 올해 굳이 대기업을 밀어주는 방식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 현장에선 MAS가 맞다는 여론이 높다"고 설명했다.

/신지영·명종원 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