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가벼운 이야기들만 오고 가는 자리는 아니었다. 종종 산통을 깨는 아픈 질문을 건네야만 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금세 반전되곤 했다. "우리 애는 요새 요리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제는 호박 같은 채소도 적당히 잘 써는 거 있죠"라는 말에 다 같이 기특해 하고, "우리 애는 아직도 손 인사를 손등을 앞으로 보이면서 해요. 글쎄 상대가 자기 쪽으로 손바닥을 보이면서 인사하니까 그대로 배운거죠(웃음)"라는 일화에는 모두가 손을 들고 따라 하며 귀여워했다.
그런 하루를 마친 뒤 홀로 기록을 살펴보던 다음 날. 왜인지, 무거운 내용들만 자꾸 눈에 밟혔다. 통상 취재 당시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중요한 내용을 되짚는데, 이날의 기록은 유쾌했던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당장 보호시설을 떠나야 한다면 그 다음 곳은 어떻게 찾을지", "결국 내 손을 떠날 때면 남은 애는 어떻게 지낼지 막막할 뿐"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들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나 많이 웃고 떠드는 사람들도 혼자 있으면 그렇게 걱정도 많아지고 우울해 한다"는 말의 본뜻을 그제야 체감했다.
혼자 남겨진 발달장애인 가정이 겪을 우울감은 안타깝게도 비극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발달장애 자녀를 둔 보호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경기도 내에서만 5건이었다. 안산에서 홀로 발달장애 20대 형제를 키우다 숨진 60대 남성은 주변에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생활고에 시달렸었고, 수원시와 시흥시의 부모들은 처지를 비관해 제 손으로 자식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애석하지만 다음 비극을 방지할 '골든 타임'도 길지 않다. 평균연령과 사망연령을 기준으로 가장 보통의 발달장애인은 23년, 정도가 심하다고 분류되는 자폐성 장애인은 9년 남짓이다. 통상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진출을 바라볼 즈음, 어떤 부모들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맡길 기관을 알아서 찾아다니기 시작하는 실정이다.
며칠간 발달장애 가정을 취재하는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무거운 현실 때문에, 무겁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충실히 전하려다 보니 첫날의 웃고 떠든 기억도 잠시 잊고 있었다. 하지만 힘겹게나마 그날의 유쾌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려 한다. 보호자들은 발달장애인이라고 '천사'만 있는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비장애인처럼 다양한 성격과 특징을 각자가 갖고 있고, 때론 부모들 미운 점도 쏙 빼닮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각자만의 개성을 동등한 시선에서 서로 알아봐 줄 때 "힘들더라도 같이 웃을 수 있어서 좋다"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촘촘한 지원체계도 물론 시급하지만, 외부 도움에 의지한들 절로 웃음까지 나오는 유쾌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왜 그날의 유쾌한 기억을 기사에 싣지 못했을까. 오늘은 장애인의 날, 기획보도가 모두 출고된 뒤에서야 드는 단상이자 짧은 반성이다.
/김산 사회부 기자 mountai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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