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티라미수 케이크를 만들 거예요." "우와, 생크림도 들어가요?"
고소한 빵 냄새가 폴폴 나는 제빵공간, 하나둘씩 모인 '빌리저'(발달장애인)들이 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제빵 과정 설명을 들은 뒤, 혜원(가명)씨가 제빵기 앞으로 나섰다.
'코워커(사회복지사)'의 지도를 받으며 조심스레 달걀을 깨고 믹서기를 이리저리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근사한 티라미수 케이크가 완성됐다. 이날 생일을 맞이한 혜원씨를 축하하는 케이크였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방문한 양평 캠프힐마을의 오후 작업시간 모습이다. 산자락 중턱에 위치한 이곳은 시설이 아닌 마을 공동체를 지향한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거주시설과 작업활동 공간이 결합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제빵 외에도 수공예, 목공 작업도 진행된다. 실용적 기술을 습득해 스스로 효능감을 느끼도록 하면서, 반복적 작업으로 안정감을 부여해 발달장애인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이 밖에도 닭장 속 달걀 거두기, 식탁보 차리기 등 구성원 모두에게 명확한 역할을 지정해 서로를 동등한 마을 주민으로 여긴다. 그래서 호칭도 마을 주민을 뜻하는 빌리저로 불린다.
거주시설·작업활동 결합된 공간
스스로 선택권 갖도록 하는 취지
예산·인프라 등 '정책 지원' 관건
김은영 시설장은 영국 유학 생활에서 일찍이 선진적인 장애친화 환경을 접한 뒤 7년 전 이곳에 캠프힐마을을 정착시켰다. 그는 "궁극적으로 비장애인과 경계 없이 동등한 문화를 향유하는 삶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처럼 하나의 거주시설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 단위 생활권이 발달장애인들과 상생할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거주시설의 안정적인 보호 환경을 유지하면서도 가까운 거리에 장애인 스스로 선택권과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취지다.
한해영 수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은 "거주시설의 경계를 넘어 여가, 의료, 일자리까지 주체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마을공동체 형태라면 발달장애인에게 친화적인 환경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역시나 정책적 지원 여부다. 조직적인 도시 구조 등을 미루어 보면 현행처럼 개별 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시설 형태로는 지역사회와의 경계를 허무는 데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예산과 인프라 지원이 선행돼야 지역사회와 어울려 생활하는 구조를 갖출 수 있고, 나아가 일상 속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