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 과거사 정리에 정부가 침묵으로 일관한다. 기이할 정도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선감도에 만들어진 소년수용소로, '감화'를 목적으로 한 시설이었지만 수용 아동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숱한 인권 유린이 이뤄졌고 많은 아동들이 죽거나 다쳤다. 일제 치하의 산물임에도 해방 이후인 1980년대까지 존속되면서 아동들에 대한 모진 노동과 학대가 지속됐다.
수십년이 흐른 최근에 이르러서야 선감학원의 실체가 드러나 정부·경기도에 대한 책임 규명이 진행되고 있다. 선감학원은 국가가 주도해 경기도가 운영했던 시설이기에 정부도, 경기도도 책임이 있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권고 사항인 유해 발굴 작업 등은 더디기만 하다.
정부는 부처 간 협의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입장만 반복하며 사실상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책임을 인정하고 자체 피해 보상에 나서는 등 선제적 움직임을 보인 경기도도 유해 발굴 작업에 대해선 정부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면서 완강한 입장이다. 진실화해위가 선감학원 사건을 유해 발굴 보조 사업 대상으로 정해 경기도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자 이를 반려하기까지 했다. 생존 피해자들과 희생자 유족들은 애가 탄다. 숨진 아동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일부만 시굴했을 때도 유해와 유품들이 속속 드러난 만큼 전수조사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코앞에서 멈춰있는 것이다.
정부에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는 경기도의 목소리는 타당하나 이미 고령이 된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겐 책임 소재를 가릴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 일제 치하 인권 유린의 역사는 피해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며 서서히 옅어지고 있다. 사건의 단면이 간신히 세상에 드러난 지금, 속도감 있게 온전한 진상을 파헤치지 않으면 금세 희미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 폭력에 희생된 이들에 대해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한다. 경기도 등과 공동기구를 구성해 진실화해위의 권고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유해 시굴 작업 전 소설가 김훈은 "사실의 힘에 의해서만 화해가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개토제에서 많은 사실들이 확인돼 사실의 힘에 의해서 화해의 단초가 잡히길 기원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유해 발굴은 역사를 바로 마주하고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다. 정부와 경기도가 함께 해야 한다.
[사설] 정부의 침묵으로 지체되는 선감학원 유해 발굴
입력 2023-04-20 19:42
수정 2023-04-2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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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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