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랑날랑 혼삿길'이란 다큐멘터리를 처음 본 건 지난주였다. 장소는 영화관이 아닌 미술관. 고백건대 현대미술 전시를 관람할 때면 영상 작품은 힐끗 보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시각효과를 사용한 이 작품도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던 찰나, 장면이 바뀌고 주인공 '민기'의 아버지가 말을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민기'를 타일렀다. 분노하는 대신 온화한 태도로, 마치 교화시킬 수 있는 것이란 듯. '민기'의 정체성은 게이다. 문득 대학생 취재원들에게 보냈던 질문지가 떠올랐다.
치열한 정쟁이 한바탕 벌어졌다. 지난 2월 경기도의회는 '성평등 조례'를 두고 시끄러웠다. 기본권인 '평등권'을 담은 이 조례를 상위법에 맞춰 용어를 남성과 여성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개정안이 나왔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당사자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가장 보통의 사람, 퀴어' 첫 기획 취재 때 만났던 '퀴어 대학생' 취재원들에게 오랜만에 연락했다. 당사자들은 지역 사회의 소외된, 지워진 존재들이 앞으로 더욱더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 될 거라 걱정했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니 주전자에 담겨 팔팔 끓던 물은 잔잔해졌고, 곧바로 차갑게 식었다. 결과적으로 위 개정안은 상임위에 상정되지 않았다. 정쟁은 일단락됐고, 구상해뒀던 기사도 작성을 멈췄다. 소수자가 마주하는 부당한 현실은 여전하지만, 그 사이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무섭도록 완전히 잊혔다. '해결'된 게 아닌데 함부로 쓴 단어 때문일까. 나조차도 쉽사리 기억에서 잊은 탓일까. 다시 마음이 불편해진다.
/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