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부패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은밀성이 대표적이다.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의리에 기초한 사회적 연결망을 중심으로 평소 잘 아는 유권자들을 상대로 은밀하게 이뤄진다. 현금을 선호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적발은 물론, 적발되더라도 유죄 입증이 어렵다.
조직적이라는 특성도 있다. 후보자 개인의 조직이나 후보자 소속 정당이 개입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더욱 조직적 개입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다.
보충성을 띤다는 특성도 손꼽힌다. 선거부패로 인해 동원된 재원을 당사자가 공직에 재임하는 동안 이를 반드시 회수한다는 것이다. 부패가 또 다른 부패를 만드는 순환적 구조를 갖게 된다. 이는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내용의 일부다. 정의와 특성 등을 들여다보면, 선거 부패를 '돈 선거'로 치환해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다.
'게임이론으로 살펴본 돈 쓰는 선거의 논리'(1997)라는 논문엔 선거에 참여한 후보자들이 돈 선거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가 설명돼 있다. 논문은 '돈 쓰는 선거의 기본 원리는 결국 돈을 쓰는 것이 당선의 확률을 높일 것이라는 후보자들의 주관적 혹은 경험적 믿음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사실이건 혹은 추정되는 믿음이든, 돈을 더 쓰게 되면 그만큼 자신에 대한 지지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혹은 적어도 상대방의 돈 공세에 밀려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라는 '돈의 효율성'이 돈 선거의 중요한 이유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상황과 지금을 직접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돈 선거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현금선호·은밀' 적발돼도 유죄입증 어려워
'선거부정 방지법' 30년 지났지만 계속 발생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돈 선거를 단속하는 대표적인 기관 중 하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고 한다. 중앙선관위 50년사를 참조하면 1963년 출범한 중앙선관위의 주된 설치목적은 '공정한 선거관리'였다. 후보자 등록 처리, 선거운동 관리, 투개표 관리 및 당선인 결정 등 선거 절차 사무 관리와 선거절차 주지, 선거권자 주권 의식 양양과 투표 참여 등으로 업무가 제한적이었다.
1989년 동해시 국회의원 재선거는 중앙선관위 단속 업무 강화의 계기가 됐다. 이때 처음으로 선관위가 불법선거운동에 대한 감시와 단속을 실시하고, 적발된 후보자와 각 후보자 선거사무장에 대한 고발 등 조치를 했다. 이후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기조 아래 불법선거운동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등 4개 개별 선거법을 하나로 통합하는 통합 선거법 제정 의견이 국회에 전달됐다. 이를 토대로 현행 공직선거법의 모태가 되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이 공포됐다. 1994년 일이다.
'돈봉투 의혹' 인천 정치인 연루 체감도 커
"때가 어느 땐데"… 뿌리깊은 불신 느껴져
이후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공직선거에서 금품선거 등으로 당국에 입건되는 사례는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동시지방선거(8회)에서 금품선거 유형으로 입건된 경우는 999명이었다. 4년 전 7회 동시지방선거 때 825명보다 170여 명 늘었다. 역시 지난해 대통령선거(20대)에서 금품선거 유형으로 입건된 사람은 101명으로 19대 대선 68명에 비해 30여 명 증가했다. 2020년 국회의원선거(21대)에선 481명이 금품선거 유형으로 입건됐다. 20대 국회의원선거 때는 649명이었다. 선거에서 '돈의 효율성'이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공당의 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돈 봉투가 오갔다는 의혹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인천지역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인들이 연루돼 있어 체감도는 더욱 높다.
최근 인천시청 근처에서 점심을 같이 먹은 한 인사는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이런 의혹이 나오느냐"고 했다. 정치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느껴졌다.
/이현준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