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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오는 28일은 20세기 후반,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한 명이었던 죄르지 리게티(1923~2006)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위대한 음악가를 기리는 행사가 올해 국내에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수열이 지휘하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오는 27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경기 필 마스터피스 시리즈 Ⅶ'의 첫 작품으로 리게티의 출세작이며 대표작인 '아트모스페르'(1961)를 연주한다. 리게티의 탄생일에 열리는 연주회에서 선보이는 의미 있는 선곡이다. 지난 4월 초에 열린 2023 통영국제음악제도 리게티를 조명했다. 세계 최정상의 현대음악 연주 단체로 꼽히는 앙상블 모데른은 리게티의 '아방튀르'(1962)와 '누벨 아방튀르'(1965)를 한국 초연했다.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지난 4월 피에르 로랑 에마르와 리게티의 피아노협주곡(1988)을 연주했다. 또한, 오는 6월에 열릴 '2023 교향악 축제'에서도 정치용이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은 박종화와 함께 피아노협주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경기필, 27·28일 대표작 '의미있는 연주회'
오스트리아 망명 후 서방 음악가들과 교류
 

 

리게티는 루마니아에서 유대계 헝가리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리게티는 어린 시절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부다페스트대학(수리·물리 계열)에 합격하지만, 학교 측은 유대인인 리게티의 합격을 번복했다. 과학자의 꿈을 포기한 리게티는 18세인 1941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이내 부다페스트의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 합격한 리게티는 작곡을 공부했다. 1949년 졸업 후 모교의 교수로 있다가 1956년 헝가리 의거 때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서유럽 음악계의 관심은 나치 독재로 인해 중단된 음악 전통을 계승하는 것에 쏠려 있었다. 계승 대상은 여럿이었지만, 주된 흐름은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음렬음악)이었다. 독일 다름슈타트는 이런 흐름의 진원지였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망명한 리게티는 본격적으로 서유럽의 아방가르드 음악을 접하게 되고, 그의 음악 성향에도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리게티는 망명 이듬해인 1957년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 참여해 서방의 음악가들과 교류했다. '음향 실험'을 접하고 영향을 받기 시작한 거였다.

당시 모더니즘 음악의 큰 줄기였던 음렬음악에 배치된 음향작곡(Klangkomposition·음색음악)은 리게티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 리게티와 펜데레츠키, 윤이상 등이 집대성한 음색음악은 음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전체적인 효과에 관심을 뒀다.

'아트모스페르'는 음색 음악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88명의 연주자에 의해 구현되는 대규모 오케스트라 작품인 '아트모스페르'에서 리게티는 악기군(群)이 아닌 각 악기 하나하나에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움직임을 지시했다. 9분 정도 이어지는 곡에서 주된 주제나 동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막연한 분위기가 다소 뚜렷해지다가 흐릿해지며, 그러다가 사라지는 형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분위기'만이 존재한다. 이 작품 외에 리게티의 '레퀴엠'(1963~1965)의 감상을 추천한다. 특히 '키리에' 악장은 신비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거대한 음 송이(Tone Cluster)에 섬세하면서도 다양한 뉘앙스를 부여한 리게티는 고래(古來)로 이어진 음악의 표현력을 한층 확대했다.

'음향실험' 영향받아 '음향작곡' 한층 강화
음의 다양한 결합, 대규모 '아트모스페르'


우리에겐 진은숙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진 리게티는 아방가르드 작곡가 중에선 세상에 많이 알려진 축에 속한다.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리게티의 이름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6)에 '아트모스페르', '레퀴엠'을 비롯해 리게티의 네 작품을 무단으로 인용했다. 저작권 소송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잘 마무리됐으며, 큐브릭은 이후의 영화들에서도 리게티의 음악을 사용했다.

헝가리 출신 작곡가로 분류되지만, 평소 리게티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유럽의 지성과 문화에 속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리게티의 작품들은 유럽을 넘어 20세기에 쓰인 위대한 음악 유산이다. 작곡가의 탄생 100주년인 올해 더 많은 작품이 청중과 만났으면 좋겠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