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농민들이 땀 흘려 수확한 친환경 농산물은 농장에서 학교까지 철저한 공공의 관리 속에 식탁에 오른다. 경기도는 2009년 친환경 급식을 시작했고 2019년 공공기관 직영으로 전환했다.
지난 2019년부터 친환경 학교급식 공급체계를 주관한 경기도농수산진흥원과 23·24일 양일에 걸쳐 농가부터 학생 식탁까지 농산물이 이동하는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1천400여개 학교에 매일 같이 친환경 농산물이 공급되는 과정은 신비로울 정도로 체계적이다. 공공에서 이처럼 급식에 관심을 쏟는 까닭은 미래 경기도를 책임질 인재가 친환경 농산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안성 죽산면 3천여㎡ 대파 농장
제초제 사용 않고 '특A급' 생산
이곳 농가들은 대체로 10~11월쯤 씨를 뿌리고 5~6개월 재배 과정을 거쳐 이맘때쯤 본격적으로 대파를 재배한다. 친환경 재배 과정으로 자란 대파는 농약은 물론 제초제도 전혀 치지 않아 모양이 가지각색이다. 이 중에서도 잎 부분이 고르게 녹색을 띠고 줄기가 끝까지 곧게 뻗어있는 특A급으로 분류된 대파만이 학생들의 식판에 올라갈 수 있다.
도내 학생들의 음식 재료를 책임지는 농가들은 친환경 재배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장창덕 안성시 친환경학교급식출하회 회장은 "이곳의 채소들은 모두 시료채취를 통해 무농약 검사를 받고 친환경 인증 표시로 분류하고 있다. 농약을 전혀 치지 않기 때문에 제초제도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해충이나 잡초 관리가 더욱 힘들다. 자라난 잡초들은 모두 손으로 뽑아내고 있다. 애지중지 키운 만큼 신선도에 있어선 자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 밭에서 1차 선별된 대파는 10kg 박스에 담아져 인근 저온저장고로 이동된다. 저장고는 신선도 유지를 위해 영상 2도의 쌀쌀한 온도로 맞춰져 있다. 최대 2~3일 정도만 보관한 뒤 당일 새벽 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로 보내져 검수와 소분 작업이 진행된다.
"해충 제거 힘들어도 애지중지"
저온저장고서 2~3일 만에 출하
전처리 업체 중 한곳인 양평농협에선 10여명의 직원들이 위생복과 위생마스크를 착용한 채 새벽에 농가에서 올라온 양파 손질에 한창이었다. 흙이 듬성듬성 뭍은 양파는 기계에서 1차 세척과정을 거치고 이후 직원들은 껍질을 제거한뒤 2차 세척을 통해 센터로 배송한다.
오후 5시 30분쯤이 되면 이른 새벽 각 농가와 전처리 업체에서 손질된 채소가 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로 모여 검수와 검품 작업이 이뤄진다. 농가와 전처리 업체에서 이미 두차례 선별 작업을 거쳤지만 센터에서는 더욱 까다롭게 검수와 검품 작업을 진행한다. 양파, 당근, 대파 등 신선 채소는 박스에서 무작위로 꺼내 반으로 잘라 상태를 확인한다. 작업이 끝나면 입고 날짜와 수량을 표시한 뒤 다음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까다로운 검수, 검품 작업을 통과한 채소들은 마지막 단계인 소분 패킹 작업 단계로 보내진다. 이 단계에선 출하 전 급식소마다 요청한 주문 수량과 채소 종류를 일일이 확인한 뒤 수량에 맞게 소분한다. 이후 패킹과 지역별 분배, 출고전 스캔을 모두 마치면 도내 1천400여개 학교로 보내질 식재료 작업이 대략 밤 12시쯤 끝난다. 이른 새벽 밭에서 채소가 전달돼 학생들의 식판까지 옮겨지기 전 손질과 배분까지 모든 과정이 단 하루 만에 이뤄진다.
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 배송사 통해 각 학교별로
영양사들 유통기한·위생상태 확인한뒤 본격 조리
"재료 좋아 다 먹어… 다이어트 못참아" 긍정 반응
현장 점검 이튿날인 24일 오전 6시 진흥원은 양주시의 한 농산물 배송업체인 '온푸드'부터 찾았다. 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에서 보내진 농산물들이 이 곳에 보내면 배송업체는 각 학교별로 재분류하고, 운송하고 있다.
사업에 미참여하는 성남시를 제외한 도내 30개 시군, 37개소의 지역 배송업체가 온푸드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진흥원은 저온저장고의 보관 상태, 거래명세서와 배송지별 재분류 현황 등을 점검했다.
실제 배송이 진행되는 오전 8시 40분. 진흥원은 양주 고암중학교 급식실을 방문해 학교 검수 현황을 지켜봤다. 배송업체로부터 대파, 양배추, 양파 등이 도착하자, 학교 영양사들은 품명과 학교명, 배송일자, 유통기한을 직접 소리 내어 읽으며 확인했다. 이후 품목들의 무게, 온도를 체크하고 포장지를 뜯어 위생상태를 육안으로 점검하며 체크리스트에 기록했다. 최종 품목 상태 확인이 끝나자 영양사들은 본격적인 조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교급식이 완성되는 동안 양주시의 '청솔유기농'이란 전처리 업체를 방문했다. 지난 2021년부터 학교급식 공급을 시작한 청솔유기농은 현재 도내 1천400개 학교에 공급되는 감자, 당근, 양배추 전처리의 3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농장에서 보내진 양배추는 이곳에서 직원들이 뿌리를 자른 후 겉잎을 벗겨내 깨끗한 상태를 만들고 무게별로 포장하며 가공된다. 감자의 경우 총 5단계 이상을 거쳐야 한다. 가공라인에 올려진 감자는 세척된 후 자동 박피 과정을 거치고, 4명 이상의 작업자들이 직접 남은 껍질을 박피했다. 그 후 다시 세척되고 건조된 후에야 진공팩에 포장됐다. 감자는 물기가 없어야 갈변되지 않기 때문에 포장 과정에서도 작업자가 직접 건조 상태를 확인하는 등 엄격한 절차를 거친다.
연천으로 이동해 학교로 보내지는 김치의 71%가 생산되고 있는 경기농협식품을 찾았다. 김치공장은 30명 이상의 작업자들이 각 단계에 맞게 김치를 가공 중이었다. 먼저 세척된 배추는 작업자들이 직접 속을 열어보며 이물질 여부를 확인하는 선별 과정을 거친다. 이후 양념속이 배춧잎 사이로 채워지면 엑스레이(X-RAY) 투시기를 통과해 금속물질 혼합여부를 검사하고, 포장돼 저온창고에 보관된다. 이때 양념속은 경기농협이 학생들의 입맛과 영양 등을 고려해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김치 보다 고춧가루의 캡사이신 농도를 40% 정도 낮춰 덜 맵고 짠 상태로 제작된다.
실제 학생들의 친환경급식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다시 고암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후 12시 급식실에서 학생들과 같은 식탁에 마주한 최창수 경기도농수산진흥원 원장은 급식의 맛, 학생들의 영양 상태 등을 물었다. 원장 옆에 앉은 한 학생은 "재료를 좋은 걸 쓰는 것 같다. 채소나 김치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편이다"고 말했고, 맞은편 여학생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 조금만 먹으려 노력하는데, 급식을 먹을 때마다 못 참고 더 담는 편이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정화(55) 고암중 영양사는 "올해부터 학교가 자율배식을 시작했다. 농산물 등 편식이 우려되는 반찬들을 학생들이 남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잔반 없이 배식하고 있다. 3~4월 진행한 급식 만족도 조사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을 한 학생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틀 동안 친환경 농산물이 길러지는 순간부터 학교에서 배급되는 전 과정을 점검하며 지켜본 최창수 원장은 "모든 처리 과정을 새벽부터 밤까지 지켜 보니, 많은 분들의 노력이 합쳐진 덕분에 학생들에게 안전하고 고품질의 급식이 제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한번 더 깨닫게 됐다"며 "이번 점검에서 농가와 각 업체를 직접 방문해 많은 애로사항을 들었는데, 현재 공급 시스템이 더 발전하고 더 건강한 식품이 제공될 수 있도록 보완할 점들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