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대응에 '정치'만 남고 지자체와 시민 대의기관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이, 전세사기 최대 피해 지역인 인천 미추홀구에서 네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수천 가구에 달하는 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구제하려 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공동체조차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드문 상황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안'을 의결해 본회의로 넘긴 지난 24일, 인천 미추홀구에선 수백억원대 전세사기를 벌인 속칭 '건축왕'의 피해자인 40대 남성이 스스로 생을 끝냈다.
지난 석 달 사이 미추홀구에서만 전세사기 피해자 4명이 생을 놓았다. 국회는 25일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안(대안)을 통과시켰으나, 피해자들은 여전히 정부와 국회가 마련한 대책이 미흡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先구제後회수' 여야 의견 엇갈려
인천시, 법 제정이후로 대책 미뤄
애초 여야 정치권은 지난달 국회 임시회 기간 내에서 전세사기 특별법을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을 두고 여야 의견이 엇갈리면서 법안 심사로만 한 달의 시간을 끌었다.
이 기간 인천시는 인천시의회 임시회에서 의결 받아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 약 60억원을 추가경정예산으로 편성했으나, 더 나아간 대책은 특별법 제정 이후로 미뤄뒀었다. 피해자들은 시의회 임시회 기간인 지난 17일 시의회 앞에서 관련 추경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인천시의회는 지난 19일 본회의에서 국회의 특별법(선구제 후회수 포함)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발의된 '주택 전세사기 대책 촉구 결의안' 채택을 보류했다.
시의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는 결의안이 반대 없이 통과됐지만, 본회의에 와서는 여당 소속 의원의 보류 동의 요청 이후 재석 의원 36명에 찬성 23명, 반대 13명으로 보류됐다. 시의회의 결의안 채택 보류가 오히려 사안의 심각성을 희석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의안을 발의한 김대영(민·비례) 의원은 "결의안은 법정 집행력도 없는 선언적 의미지만, 이마저도 정치적으로 보류됐다"며 "인천시 또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와 국회에 얽매이면서 실태조사도 늦고, 대책도 늦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인천시는 내달 1일까지 특별법 제정·시행에 따른 피해자 구제 절차 진행을 위한 사전 조사를 진행하고, 시행 즉시 신속하게 지원 업무를 가동할 계획이다.
시의회는 대책 촉구결의안 '보류'
자구 분투속 단체 도움 거의 없어
피해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대책위원회를 꾸려 피해 사례와 정보를 모으고 스스로 구제하려 분투하고 있다. 지난 2월 첫 희생자가 나와서야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에 속도가 붙었다. 인천의 여러 지역 공동체조차 도움의 손길이 거의 없었다.
전문가들이 모인 직능단체, 경제단체, 사회단체, 자생단체 등 지역 공동체 대부분이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관심이 적다. 인천지방변호사회 정도가 특별법 통과 이후 개인 상담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최근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유치, 인천고등법원과 해사전문법원 유치, 공공의대 설립 등 비교적 추진 시기가 먼 현안에 대해 인천시를 비롯한 지역 여러 단체가 '범시민 유치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 상황과 대조된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인천변호사회 이외에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은 없었다"며 "지자체에서도 (정부 정책이 나올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는데, 어떤 지역 단체가 우릴 돕겠는가"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3·4면("빚 더 내라는 게 대책인가"… 미추홀 전세사기 '네번째 희생')
/박경호·백효은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