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64)씨는 최근 고심이 깊어졌다. 구인난이 계속되면서 어쩔 수 없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했는데, 이들이 급여 인상이나 사업장 이전 등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구를 거절하면 꾀병을 부리면서 일을 하지 않거나 무단결근을 하는 등 태업도 일삼는다는 게 이씨 설명이다.

이씨는 "요즘에는 외국인 근로자 수요가 높아지다 보니 이들이 '갑'이다. 국내 근로자처럼 임금을 맞춰줘도 예전처럼 열정을 갖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태업을 하기도 한다. 취업을 위해 한국에 들어오면 사업장 이전이 자유롭기 때문에 이런 제도 사각지대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포시에서 자동차용 센서 등을 생산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63)씨도 외국인 근로자의 태업을 경험했다. 입국하자마자 업무가 쉬운 업종으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태업으로 일관한 것이다. 김씨는 "요즘에 젊은 인력을 구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하는 일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무리한 요구라도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태업을 해, 울며 겨자먹기로 (이직을 위한) 계약 해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 현장의 구인난이 계속되며 외국인 근로자 채용이 늘고 있는 가운데, 수요가 높아진 만큼 불협화음도 계속되고 있다.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사업장 이전 등을 요구하고 태업을 일삼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나타나서인데, 현장 전문가들은 비자 세분화 등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외치고 있다.

일부, 이직 위한 계약 해지 요구하며 태업
근로자 귀해진 현장 "태업해도 별 수 없어"
"계약기간 사업장 변경 금지 등 제도 개정해야"


1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 근로자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E-9 비자를 발급받은 후 국내에 취업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국내 입국 전 사업주와 외국인 근로자는 면접을 진행하고 채용 합의까지 끝마친다. 문제는 외국인 근로자가 국내 입국 후 해당 사업장을 퇴사하더라도,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재취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가 일단 국내에 입국 후 더 나은 조건과 편한 일자리를 찾아 이직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태업 논란 등도 뒤따른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외국인 근로자 활용업체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외국인력 사업장 변경에 따른 중소기업 애로사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42.3%가 첫 직장에서 1년 미만을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35.1%는 직장을 옮긴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와 김씨 사례처럼 중소기업의 68%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사업장 변경을 위한 계약해지 요구를 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비자 제한, 사업장 변경 금지 등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지원본부장은 "고용허가제 시행 취지에 따라 사업장 귀책이 없는 경우 계약기간 사업장 변경을 금지하고,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며 태업 등 부당 행위 시 본국으로 출국 조치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해 정부와 국회에 적극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승택기자 taxi22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