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라고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건 지난 4월17일 미추홀구에서 30대 여성인 세 번째 사망자가 나왔을 때다. 지난 4월14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불과 사흘 만에 세 번째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당정은 조속히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시행까지 약 한 달 보름이나 걸렸다. 국회의 전세사기 특별법 의결 전날(5월24일)에도 귀한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미추홀구에서 있었다.
GM부평노동자 창원 파견후 정신건강 심각
절반이 불안·5명중 1명 '극단적 선택' 생각
이처럼 올해 들어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20~30대 청년 3명과 40대 남성 1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청년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장소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의 전셋집이다. 이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전세보증금 6천500만~9천만원의 전셋집은 마지막 안식처가 됐다. 힘들게 일해 모은 돈에 은행 빚까지 끌어다 마련한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언제 길거리로 내쫓길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거란 암담함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주식이나 코인은 투자에 따른 위험이 있지만, 전세보증금은 이익을 얻기 위해 투자한 돈도 아니다. 당연히 돌려받을 돈으로 생각한 게 잘못이었을까. 월세를 밀린 세입자가 야반도주하는 일이나 가짜 집주인과 계약한 탓에 길거리로 쫓겨나는 일은 있었어도 진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떼어먹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경인일보가 지난달 세 차례에 걸쳐 보도한 'GM부평노동자, 창원 파견 그후' 기획기사는 그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심각하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지난해 11월 한국지엠 부평 2공장 가동 중단 후 창원공장으로 파견된 노동자 362명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인천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지방 공장에 파견된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아빠' 처지가 된 대(大)공장 아저씨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설문조사 응답자(143명) 2명 중 1명이 불안·우울증을, 열의 여덟은 수면 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5명 가운데 1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힘들어하는게 뭔지 상담·치유 필요한 때다
더 늦지않도록 회사가 나서서 귀 기울여야
이들의 파견 근무는 노사 합의로 이뤄졌다. 동료들을 창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노조의 고민도 많았을 테다. '유급 순환'이 '무급 휴직'보다 낫다는 판단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창원공장으로 파견된 당사자들이다. 자신이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고 지방으로 보내질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기사는 파견 인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파견 노동자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치유가 필요하다는 게 메시지다. 기사에 등장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어려움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부평 2공장에서 창원공장으로 근무지가 바뀐 노동자는 '파견'과 '전보'로 구분할 수 있다. 파견 노동자는 언젠가 인천 공장으로 다시 돌아올 인천시민이다. 기사에서 이들을 '인천 부평 2공장에서 기름밥 먹으며 인천에 터를 잡아온 노동자 시민'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상담 및 치료를 지원해야 한다. 회사가 직원들의 건강 상태를 챙기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 더 늦지 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목동훈 인천본사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