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의 항일운동 서훈 평가가 이뤄질 모양이다. 보훈부에서 금년 3월부터 대대적인 독립운동 훈격 재평가 작업이 진행되고 있거니와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조봉암 선생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박민식 장관은 역사적 인물에게 그림자가 있더라도 빛이 훨씬 크면 후손들이 존중하고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조봉암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 제헌국회와 2대 국회의원 및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하고 제2·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재직하며 농지개혁의 기틀을 마련하고 우리나라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선구적 정치인이었지만 이승만 정권 당시 국가변란과 간첩죄로 사형선고를 받아, 1959년 7월 31일에 사형당한 비운의 정치인이었다. 2007년 9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죽산의 처형을 '비인도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구제, 명예회복 조치도 권고했다. 2011년 대법원이 재심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내려 법적인 복원은 이뤄졌지만 독립유공자 서훈은 보류돼왔다.

보훈처가 죽산의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를 보류해온 근거는 "인천 서경정 조봉암이 휼병금 150원을 냈다"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국방헌금 관련 기사이다. 그런데 친일혐의의 근거로 문제 삼은 기사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1945년 1월 일제는 죽산을 예비구금했는데 거액의 국방헌금을 낸 '애국인사'를 일제가 체포할리 만무한 일이다. 또 기사에 나오는 '조봉암'의 주소가 죽산 선생의 주소나 연고지와는 달라 동일인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보훈처는 고려하지 않았다.

조봉암 선생의 평화통일론의 토대인 평화사상, 그리고 만인평등의 인권 사상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치이다. 인천시는 서훈 재평가에 관심을 가지고 인천이 낳은 불세출의 항일운동가이자 정치선구자인 죽산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에 나서야 한다. 그의 생가와 활동 연고지를 보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조봉암 선생을 기념하는 사업은 항일 독립운동사와 지역의 정신사를 정립하는 일로 유족이나 뜻있는 민간단체만의 몫이 아니며, 정부의 독립유공자 서훈 결정 이후로 미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