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은경 교수가 지난주 언론과 인터뷰에서 "돈 봉투 사건이 (검찰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자료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또한 지난 12일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서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지만 헌법상의 권리인 것은 맞는다"고 말했다. 혁신위원장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이 혁신위원회를 꾸리기로 한 이유는 각종 비위사건과 당내 갈등으로 제1야당으로서의 기능과 위상을 잃고 민심으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혁신위를 이끌 인사가 벌써 당 주류를 의식하여 기존 당의 입장과 같은 입장을 보인다면 혁신위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혁신위의 방향과 역할에 대해서도 친명과 비명이 다른 목소리다. 친명은 당원 위주의 정당을 만들자며 혁신위의 권한을 제한하려는 입장이다. 혁신 방향에 대한 갈등으로 당내에서 혁신위 무용론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혁신위원장이 당 대표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도 최고위원회와 당 대표의 영향을 벗어나기 어려운 마당에 김 교수의 안이한 문제의식은 실망스러움을 넘어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민주당의 위기는 진보라는 말을 입에 담기도 어려운 도덕적 해이와 뻔뻔스러움에 기인한다. 개딸(개혁의 딸들)이라는 팬덤에 편승한 퇴행적 정치를 극복하고,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방탄 국회를 만들고 있는 한심한 상황을 극복해야 할 혁신위의 리더가 벌써부터 당 대표나 주류를 의식한다면 무슨 개혁과 혁신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김 교수는 정치 경력이 거의 없다. 이런 인사가 당당함과 결기마저 결여하고 있다면 혁신위 존재 자체가 의미가 없다. 정치권 이력이 없는 것이 무편무당(無偏無黨)으로 이어지지 않고 무력한 존재로 전락한다면 민주당의 위기만 더 심화시킬 뿐이다.

신임 혁신위원장은 당내 거대한 기득권 세력에 홀로 맞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혁신의 방향과 역할을 잘 설정하고 이에 저항하는 당내 집단에 철퇴를 내릴 수 있는 자신과 용기가 없다면 혁신위원장을 그만두는 것이 낫다. 지금처럼 제1야당이 범죄 혐의에 노출된 인사들 때문에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이 없다. 혁신위원장이 지금과 같은 인식을 보인다면 혁신위의 활동은 보나마나다. 신임 혁신위원장은 당내 주류를 의식하지 말고 혁신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