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일담으로 '운발'(운이 좋다)을 이야기했다. 그의 아이돌인 할리우드 스타 피터오툴이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으로 아카데미에 수차례 노미네이트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상을 못 했는데, 자신은 처음 후보에 올랐는데 수상까지 했다며 한 말이다. 많은 노력과 뛰어난 능력이 전제돼야 하지만 '운발'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정치는 더 그렇다. 여소야대와 야대여소는 한 끗 차이 같지만 실제로는 천지 차이다. 선거에서는 예선부터 본선까지 대진운도 따라줘야 되고, 난세를 만나야 영웅이 될 수 있는 운도 정치권 이야기다.
전임 경기지사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운'(?)이 따른 정치인이다. 경기도지사 시절,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정부와 다른 광역단체들이 하지 못한 '재난기본소득' 등 현금 복지를 통해 일 잘하는 이미지를 부여받았다. 밑바탕에는 '부자(富者) 경기도'가 있었다. 당시 부동산 활황으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세금이 들어오던 때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당시 이 대표는 "부동산 거래세 등의 초과세수가 1조7천억원에 이르는데, 이 초과 세수 중 경기도 몫으로 전 도민지급을 하고도 남는다"고 말할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경기도의회까지 민주당이 압도적인 다수여서 걸림돌도 없었다. 이 또한 이 대표의 운이라면 운이다.
이재명 지사시절 부동산 활황 '부자 경기도'
김지사, 경기침체로 13년만에 가용예산 감액
경기도 재정은 아껴서, 또는 열심히 한다고 크게 늘어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부동산 거래세에 상당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좋냐 나쁘냐에 따라 가용예산도 고무줄처럼 변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지리 운도 없는 도지사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경기도는 지난해 무려 13년 만에 가용 예산을 감액 편성했다. 올해는 상황이 더 나쁘다. 올 1분기 취득세는 1조9천874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6.6%인 3천960억원이 줄었다. 재작년인 2021년 2조8천227억원과 비교하면 29.6%인 8천353억원이나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 광역단체 중 유일하게 상반기 추경을 편성하지 못했다.
가용예산이 줄어든다는 것은 김 지사 역점사업에 투입해야 할 예산이 축소됐다는 뜻이다. 재정이 부족하니 김 지사가 하고 싶은 일에도 제약이 생긴다. 게다가 경기도의회마저 여·야 동수 눈치게임이다. 당근책이 없으니 도의회 야당은 사상 초유의 도지사실 연좌농성을 벌였고, 여당 역시 당의 지분이 부족한 김 지사에게 호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김 지사 역점사업이 '기회소득'인데 도의회에서 재정난 속에 왜 이 사업을 해야하느냐는 반발이 나온다. 아직 시범사업 단계인데도 말이다. 이 때문에 설득에 필요 이상의 노력이 투입된다. 내 편도 없는데, 운도 없다.
하고싶은 일 제약… 도의회 마저 '눈치게임'
'유쾌한 반란'은 환경 탓보다 재정비로 가능
운이 없어 고됐을까? 김 지사와 그 주변 인물들도 1년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해박한 지식과 정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백브리핑은 관계자들의 통제로 모두발언만 들을 수 있게 대체됐다. 혁신적 사고로 참신해 보였던 캠프 사람들도 이제는 관료가 돼 토론보다는 통제에 더 관심인 듯하다. 핵심 참모인 수석들이 책상에서 중간 관문 역할만 하다보니 현장과 괴리가 생긴다. 공직사회의 혁신을 바랐지만 이제는 '위로부터의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대안'을 먼저 말하겠다고 했는데 '비판'이 더 많아진 것도 김동연답지 않다.
'유쾌한 반란'은 김동연의 좌우명이고, 경기도정의 기조이기도 하다. 김 지사는 "처한 환경과 어려움부터 시작해 자신, 나아가 사회에 건전한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김 지사의 1년이 다가오고 있다. 많은 일을 이뤄냈지만 기대가 컸기에 부족해 보이는 게 많은 것도 사실이다. 처한 환경을 탓할 게 아니라 재정비를 하고 도약해야 할 때다. 49.06%의 득표율은 6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커져 있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 속에 김동연이 '대안'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유쾌한 반란'은 처한 상황을 탓하지 않는다. 초심을 찾아야 지원군이 생긴다. 김동연이 더욱 김동연다워져야 할 때다.
/김태성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