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6·25 전쟁 제73주년 행사장에서 한 참전 노병이 한동훈 장관에게 전달한 쪽지가 뒤늦게 화제가 됐다. 쪽지 내용이 이렇다. "저는 KLO 출신 이창건입니다. KLO가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며 지난 2월엔 보상금이, 6월 14일엔 청와대 오찬에도 초청받았습니다.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현장에서 정성껏 쪽지를 쓴 주인공은 6·25전쟁 당시 북파공작 첩보부대인 켈로(KLO)부대원으로 활약한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이다. 쪽지를 전달 받은 한 장관은 찬찬히 읽어본 뒤 행여 구겨질까 소중하게 간수하는 모습이 취재 카메라에 담겼다. 어제부터 행사장을 빛낸 에피소드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엉망진창인 대한민국 보훈 정책의 민낯을 보여주는 수치스러운 장면이었다.

켈로부대는 6·25 전쟁 때 미군이 북한 지역 정보수집과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한 한국인 특수부대로 북한이 고향인 대원이 많았고, 여성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팔미도 등대를 점령해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민간인 신분으로 병적이 없고 미군 직할이었던 탓에 부대원들의 희생은 잊혔다. 경인일보는 20여년 가까이 조명받지 못한 켈로부대원들의 한을 수시로 전달해왔지만 국가의 반응은 차가웠다.

참전 사실을 인정받은 부대원에게 유공자 예우와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관련 법들이 있었지만, 절차적 문제로 윤석열 정부 들어서야 참전 유공자의 대표성을 인정받고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94세의 이 전 회장이 정부 각료인 한 장관에서 감사의 메모를 전한 건, 참전유공자로 인정 받기 까지 70년 넘게 걸린 세월에 담긴 켈로부대원 전원의 한을 풀었다는 감회였다.

적진에서 산화했거나 실종됐거나 참전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 켈로부대원들은 유공자 명예에서 제외됐다. 켈로부대처럼 전선에서 공을 세운 이름 없는 민간인 유공자도 많았을 것이다. 70년 세월이면 유공자 발굴과 선정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증언만으로도 유공자 명단에 오르며 시비를 일으키는 분야도 있다. 이 전 회장의 감사 쪽지는 국가를 지킨 영웅들을 모질게 박대한 부끄러운 역사를 상기시킬 뿐이다. 구국의 영웅을 홀대한 결과는 천안함 자폭설로 나타난다. 정부는 켈로부대만이라도 자료와 증언이 소멸하기 전에 사전, 사후 명예회복에 전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