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하고도 1개월 전까지였던 '기자 지망생' 시기. 문학보단 비문학을 읽는 게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300쪽짜리 책 한 권을 꼬박 하루를 털어 들여다봐도, 문학은 도무지 언론사 입사 논술에 써먹을 데가 없었다. 반면 비문학은 '가성비'가 좋았다. 주장과 전제, 근거가 분명하게 담겼다. 그렇게 기자를 준비하는 동안 문학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지난 4월 소설 '통영이에요, 지금'의 저자 구효서는 인터뷰 내내 '동양의 나폴리' 통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어느 도시를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글 곳곳에서도 묻어났다. 사랑과 예술 그리고 그리움이 담긴, 통영은 그런 도시였다. 무작정 그곳으로 향해본 이유였다.
통영의 대표 문인, 박경리를 추모하는 기념관은 그저 묘소 앞에 펼쳐진 경치가 멋있다는 까닭에서 여행 코스에 담은 곳이었다. 묘소에 가기 전, 전시실을 둘러보다 벽에 붙은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문학은 삶의 진실을 추구합니다'. 뜨끔했다. 사실과 경계가 모호한 허구의 삶을 창작해 진실을 좇는 문학. 이런 문학을 비효율적이라 치부했던 과거 모습, 진실 추구는 오직 저널리즘만의 몫이라고 오만했던 점에서 괜히 민망했다.
눈앞의 사실을 전하는 기자는 한 인간의 삶을 지어내야 하는 창작의 고통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소설가도 아니면서 창작의 고통에 사로잡힌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 글은 기사로 완성하지 못했다. '잘못 전하면 혐오감만 불러일으키니까', '공부를 더 해야지'를 핑계 삼아 고고한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척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등지고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웃음이 났다.
/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