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18일 영아 살해·유기범을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형법상 영아 살해·유기 규정을 없애 일반 살해·유기죄로 처벌토록 한 것이다. 이로써 최대 형벌이 10년 이하 징역인 영아 살해죄는 일반 살해죄와 같이 무거운 양형이 적용된다. 영아 유기죄도 일반 유기죄로 강하게 처벌한다.

갑작스러운 형법 개정엔 이유가 있다. 미등록 영아 살해 사태에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고속 입법으로 면피하고 나선 것이다. 다 같은 생명이자, 더 존중받아야 할 신생아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증발했다. 국회의 입법 무관심 탓이 컸다. 갓난 생명이 죽어가는 것도 모른 채 정쟁놀이나 펼쳤던 정당과 국회의원들이다.

영아 살해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입법이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영아 살해와 유기는 오히려 가중 처벌해야 맞다. 문제는 미등록 영아 살해를 방치한 국회의 반성 입법에 선행돼야 할 사태의 본질에 대한 숙고가 전무한 점이다. 속속 드러나는 엽기적인 영아 살해 사건에 분노한 민심에만 집중하면서 국회의 입법 대응은 중구난방이다.

국회는 형법 개정에 앞서 지난달 30일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병원의 신생아 출산 신고 의무를 강제한 법이다. 출생 신고 의무화와 강력한 영아살해처벌법으로 신생아 보호의 입구와 출구를 단속한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원치 않는 출산과 병원 외 출산마저 국가가 포용하는 보호출산제는 쏙 빼놓았다. 영아 살해 사태의 본질에 접한 입법인데, 찬반 양론을 이유로 입법을 미룬다. 청문회, 토론회 등 입법을 위한 논의가 개시됐다는 소식은 없다. 출산통보제와 영아살해 강력 처벌만큼 입법 메시지가 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짐작된다.

국회의 여론 무마용 졸속 입법은 현실에서 무의미하다. 스토킹 범죄를 반의사 불벌죄에서 제외한 스토킹범죄 처벌법 통과 직후 인천에서 또 한 명의 젊은 여성이 희생됐다. 무조건 처벌을 강조했지만,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한 인력과 예산은 빠졌다. 범죄는 계속될 테고 어이 없는 희생도 막기 힘들 것이다.

영아 살해 범죄 사형 입법도 똑같이 속 빈 강정이다. 범죄자 강력 처벌에 앞서 모든 출산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법과 예산으로 살해 당하는 영아도, 영아 살해 범죄도 없애는 일이 국회 본연의 임무다. 그런데 법문 몇 자 고치는 입법으로 생색내고 면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