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피해가 집중된 충청·경상권은 물론이고 인천·경기지역도 크고 작은 피해를 본 농가가 적지 않은 탓이다. 상추와 호박 등 이미 두 배 가까이 가격이 오른 품목도 있다. 재난은 언제나 경제적 타격을 동반했지만, 올여름 폭우가 끼친 피해가 우리네 밥상에 얼마나 오래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공동체는 어김없이 자원봉사에 나서고 수해 성금을 건네는 등 위기 극복을 위해 합심했다. 위기도 함께하면 넘어설 수 있다는 신뢰에서 비롯된, 대한민국 사회의 오랜 저력이다.
도리어 신뢰에 균열을 내는 건 대통령의 발언이 아닌가 싶다. '위기 극복에 돈 쓰려고 긴축 재정을 한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민주시민의 합의로 마련된 세금을 재난 대응에 쓰는 데 반대할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다. 다만 '카르텔'이라는 단어 하나에 새로운 갈등만 형성됐다.
이권·부패 카르텔의 대상으로 지목된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에 주어지는 '보조금'과, 각종 재해를 복구하고 예방하기 위해 쓰이는 재난 대응 기금은 근거 법령부터 다르다. 국가 재정만큼 엄정하게 사용처가 구분돼야 하는 분야는 없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첫날부터 강조해온 '재정 건전성'이 실현되려면 더욱 그렇다.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의 정치 보조금을 전부 삭감하고, 농작물 피해 농가와 산 붕괴 마을 100% 보전에 투입하라." 이 문장은 현 정부의 기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 합의를 거쳐 확립된 법과 원칙을 자칫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무너진 제방은 튼튼하게 다시 쌓으면 된다. 그러나 신뢰라는 제방은 다시 세우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안 그래도 여기저기 균열이 간 마당에 커다란 구멍 하나가 더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수해로 무너진 제방을 다시 세우는 게 우선이지만, 복구해야 할 건 제방만이 아니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