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임시직 노동자 A씨는 2020년 6월3일 인천항 갑문 보수 공사 현장에서 떨어져 숨졌다. 두 아이의 아빠인 A씨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코로나19 사태와 경기 부진으로 사업체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생계유지를 위해 공사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갑문 상부에서 H빔 등 중량물을 18m 아래 바닥으로 내리는 작업에 투입됐다. 안타깝게도 중량물과 함께 갑문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끔찍한 사고를 당했는데, 그의 추락을 막을 안전설비는 없었다. 앞서 중량물 하역 작업에 대한 안전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10대 자녀 둘을 둔 가장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인천항 갑문 공사 현장서 40대 사망 사고
사업주 아닌 발주자 실형 이례적 판결 화제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 발생한 사고임에도 '사업주'나 '도급인'이 아닌 보수 공사 '발주자'(최 전 사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발주자인 공공기관도 안전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인데, 오히려 공공기관의 책임을 무겁게 봤다.
판결문에는 헌법 제34조 제6항이 등장한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기두 판사는 판결문에서 "공공기관이라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에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법률 해석"이라며 "건설 공사 도급을 주된 업무로 하는 공공기관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인 사업주로서 책임을 더 엄격하게 지워야 한다"고 했다. 또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는 건설공사 발주를 주된 업무로 하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도 허용돼선 안 된다"고 했다.
지난달 14일에는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 조병창(일본 군수공장) 병원 건물에 관한 판결이 지역사회 관심을 끌었다. 인천지방법원 제21민사부(부장판사·우라옥)는 시민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낸 '캠프 마켓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중지 가처분' 신청을 각하했다. 이번 가처분 신청은 민사 소송 대상이 아니라는 게 각하 이유다. 판결 결과만 보면 시민단체가 졌지만,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건물은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현장으로,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치가 매우 큰 건물"이라며 "유네스코에서 정한 역사상·민족학상 특별한 가치를 가지는 건축물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건물의 보호 가치 여부는 행정사건에서 추가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재판부가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 창달에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제9조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라고 규정된 점도 들었다. 재판부는 '민족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이 국가의 은혜적 시혜가 아니라 헌법상 의무'라는 2003년 1월30일 헌법재판소 결정도 제시했다.
'국가, 재해 위험으로부터 국민 보호해야'
헌법 명시… '공직자 책무' 중차대 메세지
헌법이 등장한 2건의 판결에 대해 공공기관 관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형량이나 의견 제시가 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노동자 사망 사고는 법 해석상 다툼의 소지가 있어 2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보존 문제는 토양오염 정화 작업과 얽혀 있어 행정사건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1심과 민사 소송 판결은 '공공기관의 책무가 중차대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발주한 공사 현장의 노동자가 무사히 귀가할 수 있게 안전관리 책임을 다하고, 한 채의 근대건축물이라도 더 보존해 후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자 공공기관의 책무다.
/목동훈 인천본사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