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사회교육부기자.jpg
김산 사회부 기자
약속했었다. 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20대 청년이 공장에서 일하다 숨졌던 현장을 숨가쁘게 누볐던 때다. 막 수습 딱지를 떼었던, 건조하고 기계적인 육하원칙 취재에만 익숙했던 당시 그 경험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전달을 넘어 의지를 담고자 취재칼럼을 지면에 남겼다. 그 현장을 잊지 않고 찰나의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계속 취재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부끄럽지만 그 약속은 최근까지 민망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다른 사건들에 비해 유달리 비극적인 사건은 아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열달여 동안 숱한 사건을 접하면서, 알려지든 알려지지 못하든 사연 없는 사건은 없었다. 단지 '기사가 되느냐'에 대한 판단이 있을 뿐이다. 그곳을 계속 취재하겠다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지금 이 시점에 기사가 되긴 어렵다는 판단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거듭 제쳐 두었다.

이달 공교롭게도 지난해와 같은 기업의 다른 계열사 작업장에서 또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유형의 공장이었고, 같은 방식의 끼임 사고였다. 고민 없이 현장을 찾았다. 기사가 될 거리가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뭐라도 알아내야만 했다. 누군가의 가족의 죽음을 가장 밀접한 곳에서 접했다. 익숙한 슬픔이었다. 구조적인 환경도 익숙했다. 뒤늦게 떠올린 약속에 대한 부채감 같은 것일까. 지금도 잠들기 전까지 사고 장소를 고민하고, 다음 날 그곳을 찾고 있다.

어떤 사건이든 이 넓은 세상에 그리 유별난 일이 아닐 수 있다. 과한 사명감은 부끄러움만 남긴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쩌면 기사가 될 만한 소재를 효율적으로 취재하는 기자가 좋은 기자일 수도 있다. 다만 다른 계산 없이 마땅히 취재해야만 하는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 취재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투박한 열달 전 약속은 그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리고 있다. 이젠 새로운 다짐을 남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저 취재로 밝혀져야 할 일이 있다면, 그 현장에서 당연하게 취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김산 사회부 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