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방어하기 위한 행위'의 수준까지 신경써야 한다는 게 맞나요?"

올 여름 내내 대한민국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대낮 길거리, 등산길, 백화점 등 우리 일상 속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비극이 벌어지자 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실제로 호신용품 판매가 급증하고 호신술을 배우기 위해 각종 무술을 교육하는 학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방어행위가 자칫 가해행위 되기도
'현행법, 실제 상황과 괴리' 목소리


실제로 우리가 나를 해하려는 범죄자를 맞닥뜨린다면, 특히 도망치거나 현장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스스로의 대처로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나를 지키기 위해 했던 방어행위가 사건이 끝난 후 자칫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위기상황을 직면했던 시민들이나, 전문가들은 현행법 상의 정당방위는 오직 '방어하기 위한 행위'의 정당성에만 집중하면서 실제 현장과는 괴리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래서 최근 일어난 정당방위 관련 사건을 통해 전문가와 함께 정당방위 요건·호신용품 사용· 앞으로 정당방위가 나아갈 방향 등을 알아본다.


대전 편의점 칼부림 사건
올해 5월 말 대전의 한 편의점 밖에서 술에 취한 A씨가 칼로 편의점주 B씨의 허벅지를 찌르고 계속해서 흉기로 B씨를 위협하자 B씨가 A씨를 발로 차 흉기를 빼앗았다. B씨가 A씨가 휘두른 칼에 상해까지 입었지만 사건 이후 B씨는 오히려 검찰로부터 상해 사건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다. B씨가 흉기를 빼앗은 이후에 한번 더 A씨를 발로 찼다는 이유다.

법률사무소 서인 신동운 변호사는 "해당 사건 영상을 보면 A씨가 B씨를 칼로 찔렀지만, 이후 밀쳐 넘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A씨는) 공격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B씨가) 도망치는 등 피할 수 있는 상황으로 판단되어질 수 있는데, (B씨가) 후속 동작으로 공격행위를 했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설명하면 B씨가 칼을 뺏은 행위까지는 정당방위로 볼 수 있지만, 이후 상황 중 넘어진 A씨를 B씨가 발로 차는 행위는 B씨가 A씨를 공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도 "(공격행위를 한) 부분이 경찰 단계에서 폭행으로 평가를 받았다. 어느 정도 피해 상황이 종료된다면 일단 도망가서 경찰에 신고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울 공릉동 살인사건
2015년 9월 24일 늦은 밤 군인 A씨가 술에 취해 일면식도 없는 예비부부 집에 침입해 주방에서 흉기를 꺼내 예비신부를 살해했다. 비명을 듣고 잠에서 깬 예비신랑은 A씨와 격투 끝에 흉기를 빼앗았는데, 몸싸움 과정에서 A씨가 칼에 찔려 사망했다. 검찰은 2년여의 검토 끝에 예비신랑의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신 변호사는 "상대(군인A씨)가 의도한 행위가 살인이었기 때문에 예비신랑의 방어 행위에 상당성이 있다고 판단, 정당방위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미 A씨가 예비신부를 살해했기 때문에 예비신랑의 방어 수준도 살해에 가까운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판단한 것인데, 정당방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 상대방의 공격 수준에 따라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행위의 수준이 결정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서울 방배동 폭행사건

2015년 10월 29일 서울 방배동의 한 골목길에서 운전 중이던 A씨가 경적을 울리자 길을 걷던 B씨가 화들짝 놀라 항의를 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A씨가 B씨의 목을 조르고 밀쳤다. 갑작스럽게 폭행을 당한 B씨 역시 폭행을 막기 위해 A씨의 멱살을 잡았고, 이후 두사람은 몸싸움을 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문제는 사건 이후였다. 먼저 폭행한 운전자 A씨가 폭행 혐의로 약식기소돼 사건이 종결된 줄 알았는데, 오히려 A씨가 B씨를 폭행죄로 역고소 하면서 사건이 커졌다. 결국 B씨는 폭행 혐의가 인정돼 벌금 50만원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에 대해 신 변호사는 "멱살을 잡고 밀치는 정도에서 끝났으면 쌍방 폭행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B씨가 멱살을 잡은 의도는 방어행위였지만, 몸싸움 과정부터는 정당방위의 기준을 넘어섰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몸싸움 상황이 격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취한 행동이 공격행위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신 변호사는 "예를 들어 북한이 대한민국 초소에 지뢰 도발을 한다고 해도 갑자기 전투기를 띄워서 공격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우리도 포격 정도로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신용품도 정당방위 인정 못받을 수 있어, 현행 정당방위 기준 지나치게 엄격해 개선해야

삼단봉 정당방위 기준 넘어설 수도

위기 상황서 이성적 판단 불가능

현행보다 행위의 범위 확장시켜야

 

최근 발생한 각종 흉기 난동 사건으로 스프레이 등 호신용품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다. 인터파크커머스에 따르면 지난달 발생한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이후 전달에 비해 무려 1천155%나 판매량이 급증했다. 다만, 호신용품을 사용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신 변호사는 "누가봐도 스프레이 종류는 방어하기 위한 특성을 지닌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삼단봉은 상대방 접근을 막기 위해 휘두르며 도망치지 않는 이상, 상대를 공격하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어서 정당방위 행위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다.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호신용품 사용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떻게 활용하나에 따라 특수폭행이 될 수도 있고, 정당방위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소리다.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향해 예기치 못한 범죄사건이 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정당방위에 대한 범위와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1년 경찰청이 발표한 '폭력사건 정당방위 처리지침'에 따르면 ▲상대의 폭력을 막기 위한 최소한도의 폭력 ▲상대의 피해가 자신의 피해 정도 보다 적을 것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살해 위협 등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지침에 따라 이성적 판단을 하고, (정당방위) 기준과 범위를 고려해 대응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 변호사는 "칼을 들고 있는 정도의 상황이라면 방어행위를 확장시켜 정당방위 행위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시간적 간격이 크지 않은, 순식간에 행위들이 일어나는 상태에서 다소 공격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행위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목숨이 위태로운 긴박한 상황인데, (규정에 맞는) 방어행위만 집중한다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꼬집었다. 


/김대훈기자 kdh231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