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홍 장군뿐만이 아니라 육사 충무관 앞에 설치된 김좌진, 이범석, 지청천, 이회영 선생 등의 흉상도 같이 이전하려다가 반대 여론에 못 이겨 홍 장군 흉상만 옮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유난히 이념을 강조하면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의 존재를 역설하고 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을 언급하고 '시대착오적인 투쟁과 혁명,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육사가 뜬금없이 홍범도 장군의 1920년대 소련 공산당 입당을 문제 삼는 것도 이념을 강조하는 연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말하는 '이념'의 잣대가 왜 홍범도 장군에게 적용돼야 하는지 명확한 논리적 설명이 없다. 정부 일각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 때 우리 독립군 학살에 관여했다거나 공산당 활동을 한 인사가 육사 교정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막연한 얘기들이다. 역사에 대한 무지와 역사의식의 부재, 부박한 인식의 현주소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당시 소련은 1917년 레닌 혁명 이후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지원과 해방을 역설하던 나라였다. 레닌의 공산당은 스탈린과 김일성 등과 관련이 없다. 6·25 전쟁과 1927년 홍 장군의 공산당 입당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위해 필요한 각종 지원과 고려인 보호를 위해 공산당에 입당한 게 왜 이제와서 문제가 되는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2년과 문재인 정부 때 훈장을 수여받은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덕수 국무총리는 박근혜 정부 때 명명한 해군의 홍범도함의 명칭 변경도 검토한다고 했다. 어찌 이리도 역사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이 없단 말인가.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봉환될 때 우리 공군기가 '이제는 대한민국 공군이 호위하겠다'며 국민에게 '필승'이라는 구호로 보고한 것도 다 잘못된 것들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의 대지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임기제 정권들이 역사를 함부로 재단해 온 반역사적 행태를 이제 멈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