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애인·아이 등 취약계층을 보살피는 돌봄 노동자의 중요성은 가파른 저출생·고령화 추세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와 경기도가 이에 발맞추듯 돌봄 노동을 '필수 업무'로 인식하고 '돌봄서비스 종사자'의 근무 여건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나, 현장 돌봄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열악한 처우에 허덕이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밑바닥 돌봄' 노동을 하는 이들의 일터를 들여다보고 개선 방안을 세 차례에 걸쳐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65세 이상 노인 가정 찾아 '말벗'
건강상태에 따라 청소·요리 병행
"'정신적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을 책임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4년차 노인생활지도사 윤화자(65)씨는 자부심 짙게 밴 말투로 자신의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65세 이상 노인의 가정을 찾아 때론 '말벗'이 돼주며, 그들의 건강상태에 따라 청소와 요리 등 기본적인 가사 노동을 돕기도 한다. 지난 7일 취재진이 그와 그가 찾는 가정의 동의를 구해 가정방문에 동행했다.
이날 오전 9시40분께 수원시 팔달구 지동 행정복지센터 인근에 사는 강모(89)할아버지를 만나기 전, 화자씨는 "허리가 아프셔서 오래 걷는 것을 어려워하시고 녹내장이 진행 중이라 우울해 한다"고 강 할아버지의 상태를 짚었다.
강 할아버지가 화자씨를 먼저 반겼다. 눈이 나빠져 외출이 뜸해졌다던 강 할아버지가 집 앞까지 마중 나온 것이다. 경로당에 가도 이제 눈이 아파 좋아하는 화투, 장기도 못 둔다고 한다. 약을 먹고 그저 하염없이 잠만 자다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에게 일상의 행복은 일주일에 한두번 오는 화자씨의 방문이다.
화자씨는 이뿐 아니라 방문 가정 가족 사이의 '다리' 역할도 한다. 한번은 화자씨가 돌보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딸에게 전했다. 우울증을 겪는 할머니의 안부를 듣고 딸은 크게 안심했다고 한다. 화자씨는 며칠 뒤 강 할아버지의 녹내장 검사를 위해 병원에 동행한다는 계획을 잡았다. "혼자 (병원)가면 선생님 말 듣고 잊어버릴 거 같다"는 할아버지의 걱정에 화자씨는 "이미 가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며 웃으며 화답했다.
이날 화자씨는 강 할아버지의 집을 나와 김모(75) 할아버지와 박모(69) 할아버지의 집을 차례로 찾았다. 반지하주택에 사는 김 할아버지 집에 들어서자 벽면에 각종 요리 레시피와 메뉴의 효능이 적힌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요리를 즐기는 김 할아버지를 위해 화자씨가 마련한 것이다. 김 할아버지는 화자씨가 찾는 노인들 가운데 드물게 노동을 통해 일정 급여를 충당한다. 김 할아버지는 "어제는 겉절이를 담갔다"며 화자씨를 보며 뿌듯해 했다.
화자씨는 박 할아버지의 집을 찾기 전 마트에 들렀다. 어릴 적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쳐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박 할아버지가 며칠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서다. 16㎡ 남짓한 원룸은 좁았지만, 집안의 물품은 깔끔히 정리돼 있었다.
움직임이 적어 입맛이 없다던 그를 위해 화자씨는 미숫가루와 우유 등 맞춤형 음식도 준비한다. 이날 준비한 건 냉면. 박 할아버지의 입맛과 기운을 돋구기 위한 복안이다. 화자씨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먹는 양도 늘고 혼자 음식을 차리시는 것을 보면 보람이 생긴다"고 말했다.
무리한 집안일·폭언보다 힘든 건
교통비조차 안주는 '열악한 처우'
화자씨는 할아버지들의 집을 들어가기 전, 자신의 업무를 기록하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접속'을, 나오면 '종료' 버튼을 눌렀다. 화자씨가 기록한 업무 내용과 노인들의 상태는 실시간으로 사회복지사에게 보고된다. 이는 출퇴근 시간은 물론 급여를 산정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화자씨가 지난 6월 하루 평균 5시간가량 일하며 시 위탁 기관으로부터 받은 월 급여(세금 제외 전)는 125만원 남짓이다. 무리한 집안일 요구나 폭언도 적응한 그를 짓누르는 건 열악한 처우라고 한다.
그는 “위급상황 등 특수한 상황이 생기면 퇴근 시간을 넘겨 일할 때가 있다. 교통비를 사비로 때우고, (어르신들과) 통화를 자주해 비싼 요금제를 사용함에도 지원금이 없다"며 "정책 설계자들이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수현기자·목은수 수습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