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회사 대표이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직장인 박모(32)씨는 두통과 우울증 등으로 일상 생활이 어려웠지만 수원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고용평등상담실을 통해 대응방법과 법률 자문, 정신적 피해 치료 등을 지원받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각 지역 여성 노동자회 등에 설치된 고용평등상담실은 여성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겪는 여러 고충을 상담할 수 있는 곳이다. 한 해 평균 7천건 이상의 상담이 진행되는데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피해부터 육아휴직, 부당해고 등 내용도 다양하다. 박씨처럼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속으로만 앓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버팀목이 됐다는 평이다.
"女노동자 설자리 잃을지도" 우려
고용부 "운영 실효성 높이려는것"
고용부 "운영 실효성 높이려는것"
그러나 정부가 내년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을 반토막내면서 여성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사업 방식을 변경하기 위해 예산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여성단체들은 피해를 입은 여성 노동자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을 없애는 조치라고 반박한다.
27일 관계 정부부처와 경기지역 여성단체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2024년도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을 '고용평등상담 지원' 명목으로 변경한 뒤 올해 대비 54.7% 감액하기로 결정했다.
고용평등상담실은 경기도와 인천시, 서울시 등 수도권을 시작으로 2000년 개소해 현재까지 전국 19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예산을 마련하고 지역 여성단체가 운영해왔다. 지난해까지 전국적으로 총 16만8천70건, 연 평균 7천640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내년부터는 고용평등상담실의 피해 상담 기능과, 각 지방 노동관서의 사건 조사·감독 기능을 원스톱으로 진행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이 경우 권리 구제가 신속하게 이뤄지고 사업장의 여건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를 통해 고용 평등한 노동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게 고용노동부 설명이다. 이를 위해 산하 8개 지청에서 담당 근로자를 고용해 고용평등상담실의 일부 업무를 직접 운영하는 계획 등도 세웠다.
그러나 경기지역 여성단체들은 이런 조치로 각종 성희롱·차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유진 수원여성노동자회 부대표는 "직장에서 성차별, 성희롱, 괴롭힘 피해를 겪으면 트라우마가 생길만큼 고통스럽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이러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고용평등상담실은 다른 상담기관에서 해결이 어려울 때 찾아올 수 있는 안식처이자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이제는 누가, 어떻게 듣고 함께 고민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고용평등상담실 운영을 중단하는 게 아닌, 창구 단일화를 통한 신속한 권리 구제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피해 상담 사례가 있으면 이를 조사하고 사업장을 감독하는 일도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엔 고용평등상담실의 상담 기능과 지방 노동관서의 사건 조사 및 감독 기능의 연계와 협업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내년부터는 사업 방식 변경을 통해 상담에서 권리 구제까지 창구 단일화로 실효성을 제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승택기자 taxi22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