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마친 정치권이 연휴 중에 비축한 정쟁의 동력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정국을 벼랑끝으로 몰고 갈 기세다. 더불어민주당은 연휴 직전인 27일 새벽 법원의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으로 날개를 달았다. 홍익표 원내대표를 새 원내대표로 선출하고 당색을 친명으로 일원화한 뒤 대여투쟁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재판 리스크를 강조하며 응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여야는 표면적으로 민생을 강조하고 있다. 총선을 의식해 민심을 선취하기 위한 국면 전환의 주도권 경쟁이다. 민주당이 먼저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만나 정쟁을 중지하고 민생을 위한 협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야 대표회담을 건너뛴 영수회담 제의 자체를 거부했다. 대장동 혐의로 재판 중인데다 검찰의 추가 기소가 예정된 상태에서 이 대표가 재판 방탄용으로 영수회담을 활용할 것으로 의심한다.

윤석열-이재명 회담은 꽉 막힌 정국 해법으로 그럴듯하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호의와 진심이 결여된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하기는 힘들다. 민주당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처리에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처리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 임명동의안은 부결을 압박 중이다. 대화하자며 대통령에게 총리 인사를 강요하고 대법원장 인선을 좌절시키려는 형국이다. 반면 청와대와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구속만 면했을 뿐 재판으로 처벌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 대표에 대한 시선 차이는 법원의 구속영장 심사 전후로 달라지지 않은 셈이니, 영수회담 제안 자체가 정쟁거리가 됐다.

여야가 진정으로 민생 정치를 회복하려면 상호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정치적 손익이 갈리는 영수회담이 아니라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대표회담으로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 서민은 가계부채, 주거불안을 덜어 줄 민생입법 통과에 목을 매고 있다. 추석 민심을 경청했다면 국민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는지 모를 리 없다.

여야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노란봉투법·방송법 등 정쟁 유발 안건에 대해 통 크게 협상력을 발휘하고, 반드시 처리해야 할 민생입법 리스트 작성에 합의한다면 정치는 비로소 정상화의 길목에 설 수 있다. 이렇게 신뢰가 쌓여야 국민통합을 상징하는 영수회담도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