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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지방통계청 통계조사원 A(50대·여)씨는 근무한지 어언 4년차지만 여전히 조사 가구를 방문할 때는 심호흡을 크게 한다. 매번 조사 때마다 한두 번씩은 욕설 섞인 폭언을 들으며 문전박대 당하기 때문이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이어지는 조사 동안에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혹시라도 조사 대상자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중간에 조사가 중단될 수도 있어서다.

A씨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만드는 통계 조사지만, 요새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서 조사 대상자들도 우리가 방문하면 경계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 번 폭언을 들으면 다음 통계 조사를 하기가 두려울 정도로 감정 노동이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오는 24일부터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가 시작되지만, A씨처럼 현장 조사를 진행하는 통계조사원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통계 자료가 국가 정책의 토대가 되는 만큼 조사의 질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통계조사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주영 의원 근로실태 설문 결과
응답자 97.2%, 사고 위험에 불안
신체적 위협·성적수치심 등 경험
53.7% "초과 근무수당도 못 받아"

19일 김주영(김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실시한 '통계조사원 근로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709명)의 97.2%가 조사 업무 중 각종 사고 위험에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6%는 조사 업무 중 조사 대상자에게 신체적 위협 또는 폭언을, 37.2%는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말이나 행동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런 위협에도 통계조사원들은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선 조사자와의 관계가 중요해서다. 신체적 위협, 폭언, 성적 수치심, 사적 연락 등을 경험해도 응답자의 49.9%는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또 정해진 업무 시간 이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에 따른 초과 근무 수당을 받지 못하는 비율도 높은 편으로 조사됐다. 조사원들이 단체협약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초과근무 보상은 월 8시간(수당 3시간, 대체휴무 5시간)이다. 이에 응답자 55.3%가 주 40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있지만, 이 중 53.7%가 최근 1년 동안 초과 근무 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통계청은 매뉴얼을 통해 방문지역이 위험할 경우 2인 1조 동행 출장을 권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는 게 조사원들의 설명이다. 통계조사원 B씨는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조사하는 게 대다수다. 평균 조사 가구가 40가구라 기간 내 조사하고 서류를 작성하려면 2인 1조 시간을 맞춰 방문하는 게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국가 정책의 기초자료를 생산하는 통계조사원의 안전 확보, 임금 체계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조사원의 노동 환경과 처우가 열악하면 결론적으로 통계의 정확성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통계청 관계자는 "통계조사원들의 안전을 위해 안전용품을 지급하고 있다. 2인 1조 동행은 출장 수당도 2배로 들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 예산 확보도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러 환경이 바뀔 때마다 조건에 맞게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