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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래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난 1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인천시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약 30분 전 시청 본관 앞마당에 전세사기로 피해를 입은 인천시민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했다. 국정감사를 들으러 인천시청에 가는 길에 잠시 멈춰 이들의 말을 들었다. 같은 회사 사회부 기자가 취재 중이었다. 기자회견은 한산했다. 주최 측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와 행안위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비례) 의원 쪽 인사가 참석자보다 더 많았다. 인천 전세사기 사건이 올 상반기 정치권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이날 기자회견은 무척 을씨년스러웠다.

행안위의 인천시 국정감사 하루 전 용혜인 의원은 '인천시 전세사기 피해 지원 예산 집행률 0.88%'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인천시가 상반기 추가경정예산에 피해자 지원비 63억원을 편성했는데 그 이후 4개월간 집행한 돈은 5천556만원에 불과했다. 정부가 인천의 전세사기 피해자로 1천540가구를 '공식 인정'했는데, 이 가운데 64건만 인천시의 지원을 받은 것이다. 


대책위, 인천시에 피해자 지원조례 제정 촉구
"수원 전수조사후 자체대책… 우린 왜 못해"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기자회견을 들으면 피해 회복이 아직 요원한 현실을 알 수 있다. 기자회견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요청 사안은 명확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장 비가 줄줄 새서 천장이 뚫려 있는 이 집을 어떻게 해 달라고 말씀드렸고 (관계 당국에서) 여러 번 보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집 그대로입니다. 이제는 LH에서 매입도 안 한답니다. 대책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보증금 미반환 피해 실태조사에 나서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인천시 예산 편성으로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인천시 미추홀구에 산다는 것이 또 다른 전세사기의 차별 대상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경기도 수원시는 피해 가구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자체적으로 긴급 대책을 마련하는데 왜 인천시는 못합니까."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바로 뒤편의 시청 본관 앞 계단에는 고위직이 서 있었다. 검은색 고급 세단을 타고 온 행안위 소속 의원이 내릴 때마다 차 문 앞까지 나와 웃으며 맞이했다. 피해자들이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전세사기 피해,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라고 쓰인 옷을 입고 인천시에 피해자 지원 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있었다. 불과 몇 걸음 거리에서 동시에 펼쳐진 이질적 풍경이었다. 용혜인 의원을 제외하면 그 간격을 좁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걸어온 이들은 여야 누구도 없었다. 최소한 이번 인천시 국정감사에서 여야는 전세사기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인천시가 정부와 국회에만 기댄다면, 전세사기 현안은 해를 넘겨도 해결책을 찾기 힘들 것이다.

정부·국회에만 기댄다면 현안 해결 해넘길것
향후 시정질문·행감 등서 실태 논의하기를


전세사기 발생 초기 인천시는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인천시는 '경매 중지', '긴급 주거 지원' 등의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인천시는 '이제는 우리 손을 떠났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게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시선이다. 인천시의회에서는 지난 5월 '주택 전세사기 대책 촉구 결의안'이 소관 상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표결 끝에 부결됐다.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만 법 제정 이후에도 실질적 피해 보상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정치가 왜 존재하는지, 왜 우리(인천시의원)가 시민의 세금으로 밥을 먹고 사는지 우리는 시민들에게 증명해야 할 책무가 있다." 지난 5월 인천시의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대책 촉구 결의안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청년 정치인' 김대영(비례) 시의원의 5분 발언 내용이다. 시의회가 앞으로 있을 시정질문, 행정사무감사, 예산심사 과정에서 인천 전세사기 피해 실태와 대책을 깊이 있게 논의하기를 바란다. 기자회견에 나온 한 시민은 "피해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어느 정권에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할 시간도, 여유도 저희에게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명래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