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16호, 30호, 139호…'.
40기에 달하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분묘는 이름 대신 번호로, 묻힌 지 50여 년 만에 땅 밖으로 나왔다.
1970년에 입소해 5년간 선감학원에 갇혔던 이주성(60대)씨는 137호라 적힌 분묘를 보며 눈물을 터뜨렸다. 유품에 놓인 철제 유품이 암매장당한 친구의 소지품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 유품은 친구가 굴을 까던 칼이다. 내가 밤마다 괴롭힘을 당하던 것을 보고 나의 부모님을 데려오겠다며 나갔던 친구가 3일 뒤 바닷가에 떠밀려 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가 25일 오전 11시께 경기도 안산 선감도에서 진행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에는 유해 발굴작업으로 파헤쳐져 있는 토지를 두고 옛 친구와 동료를 찾으려는 피해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피해자 곽은수(63)씨는 139호 분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자리는 광수가 확실하다. 목욕하라고 저수지로 들여보냈었다. 그런데 한참 후 한 명이 비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발에 뭐가 걸려서 건져 올리니 그게 광수였다"며 "같이 몽둥이로 맞고 얼마 안 돼 죽은 광수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전했다.
1961년도에 선감학원에 들어가 2년 뒤 탈출했다는 이규문(72)씨는 "그때 같이 있던 흑인 혼혈아동이 분명히 여기 묻혀있을 것이다. 당시 원생들이 모두 다 알 정도로 '클레멘타인' 노래를 잘했다"고 회상하면서 눈물이 맺혔다.
진화위, 추정부지 20% 진행 상태
50㎝ 미만 깊이… 12~15세 추정
"전면 조사만이 진실 규명 방법"
이날 현장은 진화위가 지난 9월 21일부터 5주간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의 분묘 40여 기를 대상으로 진행한 시굴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암매장 추정 부지인 선감동 산 37-1의 20% 정도만 진행한 실질조사며 전면 유해발굴을 위해서는 정부나 경기도 등의 협의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개된 40여기의 분묘는 110~150㎝의 길이와 50㎝ 미만 깊이로 다양하며 12~15세 나이의 아동들이 대부분 묻힌 걸로 진화위는 추정했다. 치아 210점과 단추, 허리띠 등 유품 27점도 함께 발견됐다.
진화위는 유해 부식이 가속화되고 있는 점을 강조하며 국가 차원의 발 빠른 유해발굴 진행을 촉구했다.
특히 매장 추정지의 토양은 산성도가 높고 습하며 어린 연령과 영양실조를 앓는 등 매장 당시 피해자들의 신체 특성에 따라 대부분 분묘에서 치아만 발굴될 정도로 유해 훼손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은 "수차례 현장 시굴을 보면서 갈수록 유해가 부식되는 것을 확인했는데 국가와 행안부가 실질적으로 유해발굴부터 할 것을 시급히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발굴을 담당한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원장도 "현재 조사한 구역은 전체 조사 지역의 20~30% 수준에 불과하다. 매장된 분들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만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고건·이영선·이영지기자 gogosi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