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전남 목포실내체육관. 안내방송에 졸음이 달아났다. 재밌는 취재가 분명하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이민을 갔다 다시 고국에 라켓을 잡으러 온 걸까. 전국체전을 위해 모인 16개국 해외 동포 선수 중 경기도민이 없을 리는 만무하다. 당시 시간은 오전 9시40분. 20분 동안 취재를 마치면 10시에 치러지는 경기대 한도윤의 시합도 무사히 볼 수 있다.
예상 시나리오는 물거품이 됐다. "그런데 고향이 어디세요?", "그건 왜 물어봐요? 서울이요.", "오시느라 힘들었겠어요. 고향은 어디예요?", "저요? 서울.", "연습 많이 하셨겠어요. 혹시 고향이?", "청주요." 운이 확률을 배반했다. 인터뷰한 동포 선수 중 경기도민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어느덧 분침은 10분을 가리켰다. 1세트를 시작한 한도윤이 한창 화려한 서브를 날리고 있을 게 자명했다. '사진도 찍어야 되는데…'. 이마에 땀까지 맺혔다.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없었다. 목포에서 경기도민 찾기를 그만두고 탁구 경기장으로 돌아갔다.
예상대로 한도윤은 날아다녔다. 우승에 성공한 그는 '호날두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관중에게 소소한 웃음을 줬다. 즉석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승 소감, 기억에 남는 대결 상대, 내년 계획 등 질문 세례에도 그는 논리정연하게 답했다. 덕분에 인터뷰 기사 마감이 손쉽게 끝났다.
노트북을 덮자 긴장이 풀리면서 허기가 몰아쳤다. 그 유명하다는 전라도 백반에 밥 한 공기를 싹싹 비우고 나자 기운이 났다. 그러나 포만감도 잠시, 곧이어 미뤄뒀던 탁구 해외동포부 르포 기사가 다시 압박해왔다. 경기도민을 찾지 못한 현장, '경기도민 이야기 없는 경기 지역 신문 경인일보 16면의 어느 기사'. 왠지 모르게 찝찝했다.
경기도, 경기도민, 경기도 지역지….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자 '경기도'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고 손가락만 움직였다. 완성하고 보니 나쁘지 않았다. 예상외로 '경기도' 없이도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등에서 온 동포들이 전한 사연은 지역을 초월해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였다. 매해 '전국체전 속의 작은 올림픽'을 치르러 고국으로 돌아오는 해외 동포들, 이들의 고향은 대한민국이었다.
온종일 '경기도'에 시달렸다. 스스로 정한 이상한 원칙에 퇴고 때까지 얽매여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우리 지역민들의 피부에 와닿게 소식을 전하는 건 지역 기자의 책무다. 지역기자의 정체성은 '지역'에 뿌리를 두기에 지역 없는 지역 기자는 존재 이유도 흐릿하다. 이걸 모르는 지역민도, 지역기자도 없다. 하지만 지역 프레임에 너무 함몰된 나머지 종종 관성적으로 '기계적인 지역성'을 추구했던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우승 선수에, 문화 콘텐츠에, 사건 피해자에 때로는 경기도민이 없을지라도 보도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취재 기사를 퇴고해내는 것. 그건 지역 기자의 '로컬리티'보다 상위에 자리 잡은 '저널리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민 없이 경기도 정체성을 무작정 좇다 혹여나 저널리즘을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지역성과 지역 이익을 혼동하게 되면 어떡할까. 작은 긴장감을 품고서 기사에 마침표를 찍는다.
/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