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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 마련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작성하는 등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023.10.26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영상으로 봤을 땐 너무 비현실적이라 몰랐지만 뒤늦게 공포감이 밀려오더라고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26일. 당시 상황을 인터넷을 통해 영상으로 접했던 20대 청년들은 이같이 입을 모았다. 

평소처럼 켠 트위터서 본 영상
피해자 모습·녹음된 비명 '뇌리'
초기에 경쟁하듯 콘텐츠 쏟아져
정책에 따라 지금은 대부분 삭제
 

용인시 수지구에 사는 22살 대학생 이모씨는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하다고 한다. 평소같이 트위터를 켜고 화제의 사건을 보던 이씨는 밤늦은 시간임에도 연신 올라오는 참사 영상을 접하게 됐다.

거리에 누워있는 피해자들의 모습과 사고 당시 촬영된 영상, 녹음된 비명은 아직도 머리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각종 SNS에 올라온 영상과 사진들은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채 현장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이씨는 "영상을 볼 당시에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몰랐다"며 "뒤늦게 공포감이 밀려오는 것을 깨닫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수원시 장안구에 사는 직장인 윤모(27)씨도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참사 직전 이태원을 방문했던 그는 유튜브에서 올라오는 사고 영상들을 보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참사 초기 유튜브를 비롯해 틱톡 등 동영상 콘텐츠 플랫폼에는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자극적인 영상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 1주기 기억과 안전의 길 (6)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 설치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23.10.26/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윤씨는 영상에 여과 없이 나오는 피해자들의 적나라한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는 한편 무분별한 피해 영상 유포를 우려했다. 그는 "나도 이런 참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 피해 영상이 일파만파 퍼져나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심정을 전했다.


참사 이후 시간이 지나자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비롯해 여러 콘텐츠 플랫폼에는 사건 초기 보였던 무분별한 참사 영상과 사진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각 플랫폼의 민감한 콘텐츠 안전 유지 정책에 따라 현재는 대부분 삭제 처리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 유튜브를 비롯한 트위터, 틱톡 등은 자체 내부규정을 마련해 모니터링과 이용자들의 신고 기능으로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상을 지우고 유포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등의 조처를 했다.

구글코리아 유튜브 측은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 후 커뮤니티 가이드에 따라 동영상을 삭제하거나 연령 제한을 적용하는 등 신속하게 조치했다"며 "동시에 관련 검색 및 추천 결과에 뉴스 매체와 같은 공신력 있는 출처의 동영상을 노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이태원 참사 영상을 목격한 이씨와 윤씨 모두 올해 7월에 벌어진 신림동 칼부림 사건의 모자이크 없는 CCTV 영상 역시 사건 직후 인터넷을 통해 봤다고 말해 플랫폼 업체들의 사후 대책만으로는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 양상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참사 1주기 기억과 안전의 길 (10)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 설치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23.10.26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일각에선 콘텐츠 플랫폼 업체들이 피해 영상 유포 시작 단계에서 사용자들이 접하는 경로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김동욱 회장은 "영상을 접한 사람에 따라 현장에서 있던 사람보다 더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인터넷 콘텐츠 플랫폼 업체도 해당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참사를 경험할 이용자들의 정신건강을 고려해 자체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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