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70대 노모와 딸은 어찌 살아야 합니까
지난 27일 오후 평택시 진위면의 한 장례식장. 나흘 전 영풍제지 평택 공장에서 종이를 재단하는 롤러에 끼여 숨진 40대 노동자 A씨(10월25일자 7면 보도=종이 자르는 작업중 기계에 끼여… 평택 영풍제지 40대 노동자 숨져)의 빈소에서 동생 B씨는 "홀로 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오빠가 원인 모를 사고로 갑자기 떠났다"면서 "이제 당장 엄마와 딸만 한집에 남게 됐는데 앞길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홀로 세 가족의 생계 책임 지던 고인
불과 석 달 전 정규직 일자리 얻게돼
사망 당일 사고 지점 찾은 유가족들
의문 많은데 회사 해명 못 들어 '분통'
'주가조작 의혹' 휩싸이자 수습하느라
사망 책임 뒷전에 둔 게 아니냐는 의심
영풍제지 "유가족 요구와 이견차 있어"
불과 석 달 전 정규직 일자리 얻게돼
사망 당일 사고 지점 찾은 유가족들
의문 많은데 회사 해명 못 들어 '분통'
'주가조작 의혹' 휩싸이자 수습하느라
사망 책임 뒷전에 둔 게 아니냐는 의심
영풍제지 "유가족 요구와 이견차 있어"
유가족이 고인의 사망소식을 받아든 건 사고 발생 몇 시간 뒤 병원을 통해서였다. '외상으로 인한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의료진의 말을 처음 접한 A씨 어머니가 경황없이 B씨에게 '심정지'라는 단어만 떼어 전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큰 지병 없이 늠름하게 가정을 이끌던 오빠였기 때문이다. 불과 석 달 전 40대 중반 나이에 영풍제지 정규직 일자리를 얻어 딸의 학자금 걱정은 덜었다며 해맑게 웃던 그의 얼굴도 스쳤다.
B씨는 "처음에는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며 "용기도 없고 겁이 났는데, 병원에 가서야 (사망)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 가운데 A씨의 발인 일정과 장지만 '공란(-)'으로 비어 있었다. 사망 나흘째임에도 사측으로부터 A씨가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과 진심 어린 사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다. A씨 유가족에 따르면 사망 당일 사고지점을 직접 찾았을 때 온갖 의문투성이였다.
작업 중 발을 헛디뎌 롤러로 빨려 들어갔다는 설명만 들었는데 헬멧 같은 기본 보호구도 없었고, 위험 상황을 대비한 멈춤 장치의 작동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B씨는 "멈춤 장치 작동은커녕 위험 지역 진입을 막는 노란색 철제 안전 펜스도 먼지만 잔뜩 껴 있어 작동 여부가 의심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구석뿐이었는데도 사측은 어떤 해명도 내놓지 못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 수사, 부검 결과만 바라보고 회사는 사과 없이 기다리라고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회사가 진심 어린 사과와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공장에 추모 공간을 5일 정도 마련해 망자를 기리고, 진상 규명에 대한 연대 목소리를 모으자는 것도 이들의 요구 사항이다.
회사가 때아닌 '주가조작 의혹'의 중심에 서서 이를 수습하느라 사망 책임을 뒷전에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드는 만큼 사측이 눈에 띄는 움직임을 나타내야 한다고 유가족은 주장한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빠가 없어지는 세상이 막막한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장례식장에서 어렵게 입을 뗀 A씨의 중학생 딸이 말했다.
A씨 죽음과 관련 영풍제지 측은 경인일보에 "회사 직원의 사망사고인 만큼 유가족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견차가 있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A씨 죽음과 관련 영풍제지 측은 경인일보에 "회사 직원의 사망사고인 만큼 유가족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견차가 있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