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이태원 참사 1주기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여권의 고위직 인사들은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26일 단행된 경찰 고위직 전보 인사에서 피의자 신분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유임됐다. 참사 1주기에 정부의 메시지가 윤 대통령 추모식 불참과 김 청장의 유임인 셈이다. 김 청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치상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1년째 김 청장에 대한 형사처분을 미루고 있다.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이 김 청장에 대한 기소를 미루는 것은 책임이 윗선에까지 갈 수 있는 정권 부담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는 정권의 기조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전달할 길이 없다. 바뀌지 않으니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은 민생과 경제를 강조하고 '늘 국민이 옳다'고 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명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대통령실은 이태원 참사 1주기 행사가 야당이 주도하는 정치행사라는 이유를 들어 불참한다고 했다. 야당이 주도하면 여당은 참석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참으로 용렬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참사 1주기가 지나도록 책임지는 정부 고위직 인사는 한 명도 없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고 있다. 진정으로 정부가 책임의식을 느끼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려면 대통령을 비롯하여 관계 장관, 수사선상에 오른 공직자들이 사과와 함께 책임을 지고 재발 방지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치안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 장관은 탄핵국면에 송치조차 되지 않았고, 윤희근 경찰청장 역시 입건되지 않았다. 법적 처리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대형 인명 사고에 누구 하나 책임지고 자리를 내놓은 최고책임자가 없으니 이를 정상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고도 내년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오도 보통 큰 착오가 아니다. 강서구청장 선거에 참패한 국민의힘은 혁신위를 구성하고 쇄신을 다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여권 고위직의 인식들로 미루어볼 때 혁신위가 제도 몇 개 개선한다고 여권이나 여당이 바뀔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1년을 맞아 무엇을 바꿨는지 곱씹어보고 지금이라도 국민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기 바란다. 민주주의는 책임정치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