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에 맞게 띄어쓰기와 붙여쓰기하려고 노력하는데 일부러 붙여 쓰는 단어들이 있다. 나만의 띄어·붙여쓰기 기준으로, 대표적인 것이 '정당현수막'이다. 대형마트, 학교폭력, 층간소음, 전세사기 등도 그런 경우다. 규모가 큰 일반 마트는 '대형 마트'로 띄어 쓰고, 이마트와 홈플러스와 같은 유통 공룡들의 지점은 '대형마트'로 붙여 쓴다. 학교폭력, 층간소음, 전세사기는 여럿이 목숨을 잃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하나의 단어가 됐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이 옳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특별한 혜택' 불구 혐오·비방 정쟁 수단 악용
인천시, 조례 개정 규제 강화… 대법 '기각'
정당현수막을 정당 현수막이 아닌 정당현수막으로 붙여 쓰는 이유가 궁금할 듯하다. 국회는 지난해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행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하면서 정당현수막에 특혜를 줬다. 정당이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표시·설치하는 경우 허가·신고를 배제하도록 했다. 이 법 제8조 8항 내용이다. 정당현수막은 일반 현수막과 달리 특혜를 누린다는 점에서 하나의 단어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필자 판단이다.
법 개정 이후 정당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무분별하게 내걸렸다. 운전자와 보행자 시야를 가로막는 것도 문제지만 현수막에 적힌 여야 간 길거리 비방전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자유로운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특별한 혜택'을 줬는데 혐오와 비방 등 정쟁 수단으로 악용된 것이다. 현수막 줄에 행인이 걸려 다치는 일도 있었다.
정당현수막을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치자 인천시는 전국 최초로 조례 개정을 통해 정당현수막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행정안전부가 상위법에 어긋난다며 조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대법원에 냈는데 기각됐다. 상위법 저촉 여부를 따지는 본안 소송이 남아있지만 정당현수막 규제 움직임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대구, 부산, 광주광역시, 울산 등 다른 지자체들도 조례 개정을 통해 정당현수막 규제에 나섰다. 하지만 옥외광고물법 개정이 늦어지는 탓에 행안부와 해당 지자체 간 법적 다툼이 벌어지는 등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다.
'규제 움직임' 전국으로 확산·정치권도 자성
행안위, 법개정 의결… 늦었지만 환영할 일
정치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지난달 1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인천시 국정감사에서 "국회가 해야 할 일인데, 인천시가 선도해 줘서 고맙다"며 "행안위도 빨리 이 법안(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심사해야 한다"고 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시민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정당현수막 정비를 지지하고 성원한다"면서 "정치 후진성의 민낯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0일 "정쟁이 아닌 민생을 위한 길에 나서겠다"며 정쟁성 현수막 철거를 시작했다.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과도한 현수막 게시도 지양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 회의장에 피켓을 들고 가지 않고 상대 당을 향해 고성·야유·막말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여야 모두 정쟁을 멈추고 민생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그 약속이 내년 4월 총선 후에도 계속 지켜질지 지켜볼 일이다. 총선 표심을 의식한 전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당현수막 공해'를 초래한 행안위는 지난달 31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정당현수막 난립을 방지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인천시가 전국 최초로 관련 조례를 개정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늦었지만 당연하고 환영할 일이다.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내년 1월부터는 정당현수막이 아닌 정당 현수막으로 띄어 쓸 생각이다.
/목동훈 인천본사 편집국장